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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IV)-'클라라’ (Beloved Clara)(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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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의 아내, 브람스의 연인 -
두 거장을 떠받친 명피아니스트

 

 

(지난 호에 이어)
 [註: '랄라 룩(Lalla Rookh)'은 17세기 인도 무갈 제국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 1618~1707)의 용감한 딸의 이름이다. 그녀는 부카라 왕국의 젊은 왕과 약혼하기 위하여 그를 만나러 가는 도중, 시인 페라모르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여기서부터 흥미진진한 네 가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천국과 페리'는 그 중 두 번째 얘기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신랑의 궁에 도착한 랄라 룩은 졸도하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황홀경 속에서 깨어나 보니 자기가 사랑했던 그 시인은 바로 약혼자인 왕이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기서 '페리'는 파라다이스에서 쫓겨났으나 어린 아이의 기도를 보고 회개한 늙은 죄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하늘에 선물로 바쳐 다시 천국에 들어갔다는 페르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슈만은 귀에서 단조로운 'A' 음표의 이명(耳鳴•tinnitus) 증세가 또 나타나면서 가수들이 부르는 목소리가 천사의 속삭임처럼 들리는 환청에 빠진다. 또 어느 날 밤에는 혼령이 부른다며 몽유병 환자처럼 갑자기 침대를 떠나기도 했다. 그 혼령은 프란츠 슈베르트 또는 펠릭스 멘델스존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1854년 2월 17일(또는 18일)에 슈만은 천사들의 속삭임을 쫓아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곡, E플랫장조", 이른바 "유령 변주곡(Ghost Variations)"을 작곡한다. 그리고 열흘 후인 2월 27일 카니발 행렬을 따라 라인강으로 가서 몸을 던졌다. [註: 슈만의 누나 에밀리에도 1825년 물에 빠져 자살했다.] 


 다행히 지나가던 어부에 의해 구출돼 목숨은 건졌지만 집으로 돌아온 슈만은 그날로 본(Bonn)의 엔데니히(Endenich)에 있는 리하르츠 정신병 요양소에 입원한다. 집을 떠나면서 슈만은 자신을 배웅하는 클라라에게 "브람스를 오게 하라"는 말을 남긴다. [註: 리하르츠 개인 정신병요양소는 2009년에 '슈만의 집(Schumannhaus)'으로 지정되었다.] 


 슈만이 요양소에 입원해 있는 동안 클라라는 혼자 아기를 낳는다. 그때 브람스가 클라라를 찾아온다. 그리고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낳은 클라라와 아빠를 보내고 쓸쓸해 하는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註: 1850년 뒤셀도르프로 이사할 당시 2남3녀였는데(한 명이 더 있었으나 한 살 때 죽었다) 아들 루드비히는 한 살배기였고, 연년생인 페르디난트는 갓난애였다. 이사한 다음해에 딸 유지니(1851~1938)를 낳고 3년 뒤 7번째 아들 펠릭스가 바로 영화 장면에 나오는 아기이다. 
 장녀인 마리(1841~1929)는 어머니를 도와 요리 등 가사일을 도맡아 처리했을 뿐만 아니라 클라라가 브람스 사이에 오갔던 편지들을 불태워버리려 하자 극구 말린 지극한 효녀였다. 막내딸 유지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나중에 슈만 가와 브람스에 관한 책을 저술하여 지금의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브람스의 마음 속에 클라라에 대한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1854년 당시 브람스는 21살, 클라라는 35살이었다. 그 후 슈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년 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사랑이 오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로 미루어볼 때 브람스의 사랑이 상당히 깊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그 점을 암시한다. [註: 클라라와 브람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모티브로 쓴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 1935~2004)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1959)'를 원작으로 1961년 아나톨 리트박(Anatole Litvak, 1902~1974)이 제작•감독한 영화 '이수(離愁•Goodbye Again)'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슈만의 정신병동에 브람스는 방문이 자유로웠지만 클라라는 허락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생계유지를 위해 함께 연주여행을 하던 중 본의 정신병동에 들렀는데 비로소 방문이 허용된다. 슈만이 죽기 이틀 전이었고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당시 엉뚱한 뇌수술을 받아 초췌한 모습의 슈만은 그녀를 알아보았으나 말은 거의 할 수 없었다.


 1856년 7월 29일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슈만은 향년 46세로 운명했다. 검시 결과에 의하면 그의 사인(死因)은 성병인 매독(梅毒•Syphilis)으로 알려졌다. 학창시절에 감염되어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전 당시 일반적인 치료제였던 수은을 계속 투약함으로써 수은중독증에 걸렸고, 완치되지 않은 잠재매독균이 뇌종양의 일종인 수막종(髓膜腫, meningiomas)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수막종은 바로 슈만이 겪었던 '음악적 환청'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註: 최근에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도 똑같은 병인(病因)으로 투병하다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미친 것은 아니고 다만 이명 현상을 경험하기 훨씬 이전부터 심한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적 질환에 시달린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슈만 사후, 브람스와 클라라는 그들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스승의 죽음이라는 준엄한 사실은 브람스의 사랑의 불에 강한 자제를 가하게 만들었지 싶다. 한편 클라라는 당시의 사회관습상 이루어질 수 없는 연상의 여인이었고 그러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일곱 자녀들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적 모성애적 의무감이 그녀를 숙명적인 '고독한 존재'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 대신 가장 신뢰하는 평생 친구가 된다. 그래서였는지 브람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註: 클라라는 1896년 5월 20일,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일 년이 채 안 된 1897년 4월 3일, 만 63세의 브람스 역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클라라의 죽음으로 음악가로서 브람스의 삶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장면에 클라라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www.youtube.com/watch?v=OOlc2PAiWUU)을 연주하는 동안 눈가에 물기가 어리는 브람스의 얼굴과 그윽한 미소로 가끔씩 눈을 맞추는 클라라의 얼굴을 오버랩 시키면서 둘의 깊은 사랑과 우정을 암시하며 영화는 조용히 끝을 맺는다. 슈만의 곡으로 시작하여 브람스의 곡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헬마 잔더스 브람스 감독은 단순히 과거를 재구성하는 차원을 넘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또 연인으로서 두 거장을 떠받치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간 위대한 여인 클라라의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현대적이면서도 클래식한 우아한 영화를 탄생시켰다.

 

 

 

 


 내년이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이 된다. 아름다운 '로망스'를 들으며 그녀의 발자취를 쫓아 라이프치히, 뒤셀도르프로 가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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