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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ur)-LGBT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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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가장 차가운 색인 블루가 역설적으로 가장 따뜻한 색으로 된 것부터가 무언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일 냈다. 2013년 칸 영화제에서 LGBT 영화로서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그것도 만장일치로 감독과 두 주연 배우가 함께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면서 그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ur)'이다. 


 2013년 와일드 번치사 배급. 감독은 튀니지 출신 프랑스 이민자인 압델라티프 케시시. 주연 레아 세이두, 아델 엑사르코풀로스. 러닝타임 179분. 


 프랑스는 의회가 2013년 4월23일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인 '모두를 위한 결혼법'을 승인하여 유럽에서 9번째, 전세계에서 14번째로 동성 커플의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됐다. 당시 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파리의 앵발리드(Les Invalides) 광장에서 열렸는데, 그 날이 공교롭게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5월26일이었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피에르 드 마리보(1688~1763)의 미완성 소설 '마리안의 일생(La Vie de Marianne)'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심장이 그리워하는 사랑을 이룬다"는 평범한 얘기를 믿는 15살의 여고 2년생인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은 남자 선배와 사랑에 빠지고 섹스까지 나누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헤어진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파랑 머리의 미대생 4학년인 엠마(레아 세이두)와 마주친 뒤로 밤마다 꿈에 그녀가 나타나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구면서 여성을 더 좋아한다는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깨닫게 된다. 방황하던 아델은 어느 날 레스비언 바에서 우연히 엠마를 만나면서 이내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둘이 미술관을 방문한다. 둘 다 블루진 스타일이다. 누드 조각상과 회화 등을 감상하는데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악장 아다지오'가 실내에 은은히 울려 퍼진다. 이같이 장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외에 별도로 관객을 위한 배경음악은 없는 것이 또한 이 영화의 특징이다.


 그 후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레스비언의 격렬한 정사 씬이 벌어진다. 한마디로 굉장하다. 시간도 길고 묘사도 세밀해서 자칫 포르노로 보이지만(미국에서는 NC-17 등급을 받았다), 동물적이고 육체적인 본능에 탐닉하는 것과는 달리 속되지 않고 고전 회화나 조각을 보는 것처럼 내면에 밀착되는 아름다운 교감의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가장 원시적인 감정이 진실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 


 말할 수 없는 충족감과 행복감에 젖은 아델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실존주의 철학에 빗대어 "오르가즘은 본질에 앞선다"고 표현한다. 육체가 개입하지 않은 사랑은 의미가 없으며, 사랑 없는 인생은 그보다 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아무튼 섹스야말로 아델이 엠마와 열애에 빠지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러한 장면들이 삭제되면 이후에 등장하는 아델의 감정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델과 엠마의 젊음을 불태우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는 약 3시간에 걸쳐 서사시처럼 그려진다. 성인이 된 아델은 유치원 교사를 거쳐 초등학교 교사로 성장하고, 엠마는 상당수의 팬을 거느린 유명 화가로 발돋움한다. 


 그런데 엠마가 바빠지면서 서서히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고, 엠마 하나만 바라보던 아델은 더욱 짙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델이 홀로 잠든 장면을 자주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그녀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아델이 동료 남자 교사와 외도(?)한 사실을 안 엠마는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아델을 몰아붙인다. 유럽 영화답지 않게 서로 격렬하게 싸우며 울부짖고 소리 지르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거리로 쫓겨난 아델. 주인공이 동성애자로 바뀌었을 뿐 사랑과 질투, 가치관의 차이, 심지어 싸우는 일 등 모든 것이 더 하면 더 했지 이성애자와 전혀 다르지 않다. 


 케시시 감독의 세심한 연출과 미인이나 글래머 형과는 거리가 먼 두 여배우의 연기 아닌 자연스런 일상 연기를 통해 동성애라는 것이 사랑의 예외적인 형태가 아니라 그저 사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화내고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에 대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관음증을 초월해 열정적 사랑을 통한 자아 발견이라는 생생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학교 수업을 끝낸 후, 첫 데이트를 했던 숲속 벤치에서 여전히 입을 헤벌리고 고즈넉히 낮잠을 자는 아델. 옷 색깔이 바뀌었다. 예전의 블루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실연의 아픔은 오래 남는 법. 또 눈물이 난다….

 

 

 


 전화 연락을 하고 카페에서 기다리는 아델. 엠마가 나타난다. 그녀의 머리도 이미 파란색이 아니다. 둘이 조용히 포옹한다. 둘의 대화에서 세월이 흘렀고 이제 격한 감정은 많이 진정된 듯하다. 새로운 파트너 리즈가 낳은 애와 함께 셋이서 행복하게 지낸다는 엠마. 이윽고 "네가 그리워. 널 만지고 싶어. 서로 바라보고 숨소리를 듣고 싶어!"라고 말하는 아델. 그 순간 둘은 격렬하게 서로를 탐하며 애무한다. 


 이제는 엠마가 눈물을 흘린다. 엠마는 아델의 욕망을 열어주는 안내자였지만 이젠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서로가 사랑했던 시간은 진실했기에…. 


 엠마를 떠나 보내고 카페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아델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꺼이꺼이 목을 놓고 운다. 속상함 때문일까. 레스비언의 이별은 남녀의 이별보다 더 슬프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커다란 링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파란색 원피스의 화려한 차림으로 엠마의 전시회에 참석하는 아델. 서로 몇 마디 인사가 오가고 아델을 모델로 그린 누드화들에 대해 갤러리 오너가 작품평을 한다. "엠마의 과거는 파랑색이고 현재는 빨강색이야. 행복이 피어나면서도 깊은 고통이 있고, 텅 빈 시선이지만 우리를 손짓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고 담배를 손에 쥐고 홀로 골목길을 걸으며 서서히 멀어져 가는 아델의 뒷모습은 '가장 슬픈 색, 블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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