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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Wild Strawberr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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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靑春禮讚) 시리즈(III)
젊어 보고 늙어 보니 청춘은 꿈결 같더라

 

 

(지난 호에 이어)
 저녁에 아그다 부인에게 "아침엔 미안했다."고 살갑게 사과하는 이삭. 이에 뜻밖이란 듯 "어디 아프세요? 평소와는 달라서요, 박사님!"하고 대꾸하는 그녀. 


 자기방으로 가려는 그녀에게,


 이삭: 평생을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온 사이인데 직함 같은 건 안 부를 때도 됐잖아?


 아그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이삭: 왜지?


 아그다: 괜히 허물없이 지낼 생각 마세요. 난 상관없으니까.


 이삭: 우린 이제 늙었잖아?


 아그다: 박사님 마음대로요? 여자도 자존심이 있어요. 직함을 안 부르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이삭: 아그다 부인은 늘 옳은 일만 하나?


 아그다: 거의 대부분 그렇지요. 우리 나이가 되면 행동을 조심해야 된답니다. 박사님.


 그녀는 오랜만에 미소 지으며 자기 방으로 돌아가면서 "문은 열어 놓겠어요. 내가 어디서 자는 지는 아시죠? 편히 주무세요, 박사님."…


 불을 끄고 자려는데 창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세 젊은이가 기타 치며 축가를 부르고 있다. 사라가 "오늘 행렬 너무 근사했어요. 박사님을 알게 돼서 정말 영광이에요."라며 담장으로 올라와서 "박사님을 사랑해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요."하고 속삭이듯 인사한다. "잊지 않으마."하고 대답하는 이삭. 자기들은 함부르크 가는 50대 아줌마의 차를 얻어타고 가게 됐다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발코니에서, 떠나는 세 젊은이들을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노박사 이삭의 표정이 애잔하다. 비록 짧은 하루 동안이었지만 마치 가슴 시리도록 아픈 첫사랑의 연인 사라를 다시 찾고, "기억할게!"라는 마지막 사랑의 속삭임을 남기고 다시 떠나보내는 심정이었으리라.


 이 세 젊은이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동행한다. 인생이란 반복이 없고 누구든 늙어지리니 뿌리를 섬겨야 나뭇잎이 무성하듯이, 아직 늙어 보지 않은 젊은이들은 늙었다고 외면하고 업신여기고 귀찮아하지 말고, 노인을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세대를 초월해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장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는 듯하다. 시간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운 이삭이 열린 문 앞을 지나가는 아들 에발드를 부른다. 방으로 들어와 공포에 질린 듯 부동자세로 앉아있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으로 의중을 떠보는 아버지 이삭. 드디어 긴장한 에발드가 봄바람에 눈 녹듯, 물음에 앞서 먼저 속마음을 드러내 보인다. 그는 혼자서 지낼 수는 없으며 마리안느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 마리안느가 무도회에 갈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다른 신발을 바꿔 신고 들어와 발을 침대 위로 들어올려 이삭에게 보여준다. 이삭이 "아가, 사랑한다."고 말하자 그녀도 좋아한다며 이삭의 뺨에 키스를 한다. 


 처음에는 건조하고 적대적인 관계였던 며느리와는 깊은 이해와 따뜻한 애정을 나누게 되고, 서먹했던 아들에게도 한층 가깝게 다가가게 되며, 딱딱하고 고집스럽게 보이던 노교수의 얼굴은 차츰 부드럽고 온화하게 변화한다. 

 

13. 세 번째의 꿈

 


 이삭의 독백이 나온다. "그날 하루, 걱정이나 슬픔이 있었다면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내 버릇 때문이리라. 그날 저녁이었다. 또 꿈을 꾼다." 


 영화에서 이삭은 세 번의 꿈을 꾼다. 여행 떠나기 전 날 밤 침대에서, 여행 도중 차 안에서 그리고 여정을 끝낸 마지막 밤에서이다. 


 마음이 편안해진 잠자리에서의 세 번째 꿈은 가족 피크닉에서 그런 자기를 만들어 준 부모와 만나는 여정이다. 


 첫사랑 사라가 뛰어오면서 "이삭, 이제 산딸기는 없어. 가서 아빠를 모시고 와. 우린 먼저 가 있을게." 이삭이 "벌써 찾아봤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 계셔." 라고 하자, 도와주겠다는 사라의 손에 이끌려 들판을 지나 어느 호숫가에 이른다. 한 폭의 멋진 풍경화다.

 

 

 


 호숫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저만치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늙어버린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이삭의 얼굴이 클로스업 되며 눈에 이슬이 맺힌다. 

 

 

 


 장면은 바뀌어 잠자리에서 잔잔한 미소를 띄우는 이삭의 얼굴을 비춘다. 마침내 그는 부모에 대한 이해와 주변 사람들과의 화해를 통해 영혼의 평화를 되찾고 자신의 삶과도 화해함을 암시하며 영화는 조용히 끝을 맺는다. 


 스웨덴의 거장이자 20세기 최고의 감독으로 칭송되는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1918~2007)이 그의 전성기인 1957년에 만든 '산딸기'는 명실공히 그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제8회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과 제17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영화제를 휩쓸며 뜨거운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산딸기'는 더 이상 내 영화가 아니라 빅토르 시외스트롬의 영화였다."고 언급할 정도로 빅토르 시외스트롬은 같은 78세의 주인공 이삭 보리 캐릭터를 완벽하게 완성했다. 그는 스웨덴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거장 감독 겸 배우로, 영화 촬영이 끝난 3년 뒤인 1960년 세상을 떠남으로써 '산딸기'는 그의 유작이 되었다. 


 '산딸기'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꿈, 거울, 산딸기다. 자기 반영의 의미를 갖는 '거울'은 두 번째 꿈에서 사라가 이삭의 얼굴을 비춰주는 장면에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인정하기 힘들고 외면하고픈 현실을 직시하여, 과거를 용서하고,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아내 및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함으로써 '잃어버린 세대의 무능력자'가 겪는 일상의 고독과 외로움을 떨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꿈'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과거와 현실을 은유적으로 재현한다. 60여년 전 자신의 첫 연인이었던 사라의 젊은 날을 회상하던 이삭이 꿈에서 깨서 현실로 돌아오면서 이름과 외모가 같은 사라를 만나게 되는데, 사라를 중심으로 했던 젊은 시절의 삼각관계는 현재의 사라와 그 친구인 두 청년 사이에서 재현된다.


 또, 길에서 만나게 된 중년 부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은 과거 노교수와 아내와의 관계, 그리고 아들 부부의 위태로운 관계와 오버랩된다. 즉, 과거의 중요한 사건들은 현실에서 꿈보다 더 생생하게 재현되면서, 갈등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주인공 이삭이 여행 도중 들른 첫 번째 장소가 별장 옆 '산딸기 밭'이었다. 그 곳에서 환상으로 만난 첫사랑 사라의 바구니에는 금방 딴 싱싱한 산딸기가 가득하였다. 빨갛게 부풀어 올랐을 산딸기는 이삭의 젊은 날의 그것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열매의 수명이 길지 않은 산딸기. 죽음을 눈앞에 둔 노년의 하루는 혈기왕성한 청춘의 한 달에 버금가는 시간이리라. "늙어 보았느냐 나는 젊어 보았다. 젊어 보고 늙어 보니 청춘은 간밤의 꿈결 같은데 황혼은 어느새 잠깐이더라." 


 그러나 오늘은 그대 남은 인생이 시작되는 바로 그 첫째 날인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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