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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靑春禮讚) 시리즈(III)-'산딸기(Wild Strawberries)' (1)
youngho2017

 

젊어 보고 늙어 보니 청춘은 꿈결 같더라

 

 

 늙어 보았느냐
 나는 젊어 보았다.
 젊어 보고 늙어 보니
 청춘은 간밤의 꿈결 같은데
 황혼은 어느새 잠깐이더라.


 (중략)

 

 늙는 것도 서러운데
 늙어가는 것보다 더 서러운 것은 
 늙었다고 외면하고
 늙었다고 업신여기고
 늙었다고 귀찮아함이더라

 

 세상 천지에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채(본명 정순희) 시인의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의 일부이다. 바로 이 시처럼 한 노인의 하루 여정에서 겪는 현실적 사건과 과거 회상과 꿈을 통해 노년의 삶을 돌아보고, 인간의 존재와 내면적 성찰(省察)을 다룬 따뜻하고 감동적인 고전 로드무비 영화가 있다. 


 '청춘예찬'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 바로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1957년 작품 '산딸기(Wild Strawberries)'이다. 흑백 스탠더드. 러닝타임 91분.


 원제는 스웨덴어인 '스물트론스테일렛(Smultronstaellet)'. '산딸기밭'을 가리키는 말인데, 정작 이 뜻은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같은 곳', 이를테면 '당사자만 아는 감상적인 가치가 있는 비밀스런 곳'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북구(北歐) 스웨덴에서는 산딸기를 볼 수 있는 시기가 매우 짧기 때문에, 여기서 '산딸기'는 짧은 인생을 상징함과 동시에 인생의 가장 싱싱했던 젊음을 상징한다. 


 부족하나마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자의로 타이틀을 붙여 서술한 점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1. 노교수의 쓸쓸한 저녁

 

 

 


 영화가 시작되면 종소리가 떠~엉 하고 한 번 울리고, 책상에서 등을 보이고 앉아 뭔가를 쓰고 있는 노인과 그 옆에 애견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서재가 나타난다. 분위기가 쓸쓸해 보인다. 그리고 주인공인 노교수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사람들은 타인의 성격과 행동을 토론하고 비판하곤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활동을 멀리하게 됐고, 그로 인해 쓸쓸한 노년을 맞고 있다. 나는 평생을 힘들게 일해 왔다.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다. 생계유지에 꼭 필요했던 일이 과학에 대한 열정을 낳았으니까."


 카메라가 서재에 진열돼 있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역시 의사가 된 아들은 지금 룬드에 살고 있고, 결혼한 지는 오래 됐지만 아직 자식은 없다. 모친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정함을 잃지 않고 계신다. 아내 카린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때 가정부가 저녁 준비됐다고 알린다. 독백이 이어진다. "유능한 가정부를 둔 건 다행스런 일이다. 내가 완고한 학자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나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까지 종종 힘들게 했으니까 말이다. 내 이름은 에베르하드 이삭 보리. 나이는 78세이다." 


 내일 자기 모교 룬드(Lund) 대학에서 있을 '박사 학위 50주년 기념식'에서 명예상을 수상할 예정이어서 내일 낮 비행기로 떠날 계획이다.  [註: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에서 학위 유지 50년 이상이 된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상으로 'Jubilee Doctor' 또는 'Golden Doctor'라고 부른다. ‘이삭 보리(Isak Borg)’의 이니셜 I. B.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이니셜과 같으며, '보리'는 스웨덴어 발음으로 ‘요새, 성’을 의미하므로 '단단하고 강한 성격'을 뜻한다.] 


 그리고 오프닝 크레디트가 나온다. 주연 빅토르 쉬오스트롬. 타이틀 '산딸기(Smultronstaellet)', 감독 잉마르 베리만, 출연 비비 안데숀, 잉그리드 튤린, 군나르 비욘스트란드, 막스 폰 시도우 등. 촬영 군나르 피셔, 미술 기탄 구스타프슨, 음악 에릭 노드그렌.

 


 2. 첫 번째의 꿈, 죽음을 암시하는 악몽

 


 "6월 1일 토요일 밤, 난 아주 괴이한 꿈을 꾸었다." 주인공 이삭 보리의 내레이션이 계속되고 장면은 그 꿈을 보여준다. 

 

 

 


 아침 산책 중에 낯선 마을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강렬한 햇빛이 비치는 거리에는 인적 하나 없이 황폐한 집들만이 즐비하게 서 있다. 건물 앞에 걸린 대형시계를 올려다보니 시계바늘이 없다. 죽어 있는 시계. 자기의 회중시계를 끄집어내 보니 거기에도 시계바늘이 없다. 대형시계 밑에는 마치 염라대왕의 '심판의 눈' 처럼 커다란 두 눈동자가 달려있다. 이때 심장박동 소리의 효과음이 죽음에 다가가는 음산한 분위기를 극적으로 연출한다. 

 

 

 


 가까운 곳에 모자를 쓴 사람의 뒷모습이 보여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으니 훽 돌아서는데, 얼굴 형체가 없는 저승사자의 모습이다. 그 순간 몸의 형체가 녹아 없어지고 길바닥에 남아있는 옷과 모자 밑으로 피가 흘러나온다. 

 

 

 


 저만치 거리에서 마부 없이 두 말이 끄는 장례마차가 이리로 오다가 가로등에 부딪혀 넘어진다. 수레바퀴 하나가 빠져 이삭 쪽으로 굴러온다. 말이 앞으로 가려는 힘에 마차가 부서지며 관이 미끄러져 내려온다. 깨어진 관 바깥으로 시체의 한 손이 삐어져 나와있다. 가까이 가서보니 열려진 그 관 안에는 바로 자신이 누워있다. 

 

 

 

▲ 첫 번째의 꿈, 악몽에서 이삭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일련의 장면들.

 

 


 갑자기 삐져나온 손이 자신의 손을 붙잡아 힘껏 끌어당기며 관 속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註: 초현실적인 상징으로 가득한 이 장면들은 레이프 파인스(Ralph Fiennes)가 주연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스파이더(Spider•2002)', 아르노 데스플레솅 감독의 '에스더 칸(Esther Kahn•2000)' 등에서 오마주 됐다.] 


 아직 이른 아침이다. 이삭 보리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불길한 악몽에서 깨어나 추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를 듣고, 열어젖힌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보고서야 살아있음에 저윽이 안도하는 듯하다. 


 가정부를 깨워 아침 준비를 하도록 주문하는 이삭. 기분 나쁜 꿈에 대한 찝찝함 때문에 오후 5시 행사 시간에 맞춰 낮 비행기로 가려고 했던 계획을 바꿔 아침 일찍 서둘러서 차를 몰고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註: 스톡홀름에서 남서쪽에 있는 룬드까지의 거리는 약 600㎞다.]


 40년이나 수발해 왔지만 자다가 깬 가정부 아그다 부인(줄란 킨달)의 불평이 대단하다. 그러면서도 잠옷 바람으로 침실에서 나온 아그다가 계란을 삶아주랴, 토스트를 해주랴 살갑게 묻고, 연미복 등 여행짐을 척척 챙겨주는 말과 행동에 그래도 마음에 들어하는 노박사.(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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