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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汚名 Notorious)"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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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잉그리드 버그만이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에서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과 첫 인연을 맺고 두 번째로 출연한 작품이 오명(汚名•Notorious)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 10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제작한 첩보 스릴러 흑백 영화이다. 당시 캐리 그랜트가 42세, 잉그리드 버그만이 31세였으니 두 주연의 전성기 시절에 이 불후의 명작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리고 카사블랑카(1942)에서 루이 르노 서장 역으로 나왔던 클로드 레인즈가 다시 버그만과 공연했다. 1946년 8월15일 RKO라디오 픽처스 배급. 러닝타임 101분.


 이 영화의 오픈 크레디트가 끝나면 "1946년 4월24일 오후 3시20분, 플로리다 마이애미"라는 타이틀이 뜬다. 그러나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의 마이애미라는 정보일 뿐 줄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히치콕 감독은 이와 똑같은 시간과 날짜를 사이코(Psycho•1960)에서도 사용했다.   


 이어서 장면은 플로리다 법정. 존 휴버먼이 나치 독일의 전범으로 징역형 선고를 받는다. 법정에 참석했던 그의 딸 앨리시아 휴버먼(잉그리드 버그만)이 아버지의 일을 잊기 위해 파티를 연다. 파티에 온 미국의 첩보원인 T.R. 데블린(캐리 그랜트)이 그녀에게 브라질로 이동해 간 나치의 조직을 찾아내기 위해 리우 데 자네이루로 갈 것을 종용한다. 앨리시아가 협조하기를 거절하자 데블린은 그녀가 아버지와 다투면서 미국을 사랑한다고 부르짖는 대화가 녹음된 LP레코드판을 틀어준다. 이때 뼈있는 말을 내뱉는 앨리시아. "한손에는 깃발을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도둑질을 하는 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애국심이 아닌가요..."


 리우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데블린은 앨리시아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독캡슐을 먹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도착 후 본부에서의 지시를 기다리는 동안 데블린은 정작 앨리시아의 과거 때문에 착잡한 심경이지만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때 둘의 키스 장면은 히치콕 영화 중에서 가장 통정적(通情的)이고 에로틱한 키스 장면으로 회자된다. 당시 3초 이상의 키스를 금지하는 심의 규정 때문에 이를 교묘하게 피해가며 음식과 일상에 대한 사소한 대화를 속삭이고 전화도 받으면서 2분30초 동안 끌어간 이 장면은 강한 격정적인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는 모범적인 트릭으로 유명하다.


 본부의 지시는 그녀로 하여금 그녀 아버지의 친구이며 나치 그룹의 리더인 알렉산더 세바스천(클로드 레인즈)을 유혹하라는 임무였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그 역할에 적임자가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그 이유를 상관에게 차마 확신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때 세바스천이 그녀와 사랑에 빠진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데블린은 앨리시아를 만나 짐짓 냉정한 태도를 꾸미고 그녀의 임무를 알려준다. 앨리시아는 데블린이 다만 자기 직업상 목적 성취를 위해 그녀를 사랑한 척 했을 뿐이라고 믿고 이 미션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승마클럽에서 세바스천을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주선한다. 이때 세바스천은 그녀를 즉각 알아보고 레스토랑에 초대하여 "항상 다시 만나게 될 줄 알고 있었다"며 기뻐한다. 세바스천은 앨리시아를 다음날 그의 집 만찬에 초대하는데 거기에는 몇몇 사업상 지인들만 모이는 자리였다. 데블린과 미국 정보국장인 폴 프레스콧(루이스 켈헌)은 앨리시아에게 세바스천 주위 사람들의 이름과 국적 등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고 파티에 사용할 고급 목걸이까지 준다.


 다음날 세바스천의 집으로 간 앨리시아는 그의 어머니 안나(레오폴딘 콘스탄틴)와 먼저 맞닥뜨리는데 그렇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만찬석상에서 앨리시아는 한 손님이 와인병을 보고 쑤석거리며 급히 방에서 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어디를 갔다왔는지 그 신사는 만찬이 끝나서야 돌아와서 사과를 하면서 피곤해서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때 나치 그룹의 다른 사람이 굳이 그를 바래다 주겠다고 나서는데 그 신사는 살해된다.


 다음날 경마장에서 데블린을 만난 앨리시아는 만찬에 참석한 인물들에 관해 보고한 후 "세바스천의 이름을 내가 상대할 친구 명단에 포함시켜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빨리 가까워졌나!"하고 빈정거리는 데블린. 앨리시아는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바가 아닌가요?"하고 냉정하게 쏘아부치며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이때 이들을 계속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던 세바스천이 다가와 그녀에게 혹시 데블린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슬쩍 물어본다.


 그 다음날 정보국장실에 나타난 앨리시아가 세바스천이 청혼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음 지시를 받고자 왔다고 말한다. 프레스콧 국장이 이 상황을 가장 잘 알고있는 데블린의 의견을 묻자 그는 대뜸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한다. 설마 하고 기대했던 사랑하는 데블린의 냉담한 반응에 깊은 실망감을 안고 드디어 세바스천과 결혼하는 앨리시아. 그러나 세바스천의 어머니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앨리시아가 데블린을 만나 남편 세바스천이 자기에게 준 집열쇠뭉치에 포도주 보관 창고 열쇠만 없다고 알린다. 이 사실과 지난 만찬 때의 와인병 에피소드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데블린은 직접 조사를 하기 위해 앨리시아에게 큰 파티를 열도록 주문하고 자기도 초대해 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앨리시아는 비밀리에 세바스천의 열쇠고리에서 포도주 창고 열쇠를 훔친다. 그때 세바스천이 와서 격렬히 포옹하는 바람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왼손으로 옮겼다가 이윽고 카페트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보이지 않게 책상다리 옆으로 밀쳐놓음으로서 간신히 위기의 순간을 모면한다.


 리우 데 자네이루 해변가에 있는 세바스천의 맨션.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이때 카메라가 이층 발코니에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로비홀을 높이 넓게 보여주다가 점차 아래로 내려오면서 줌 인(zoom-in)하여, 숨긴 열쇠를 불안해 하며 꼼지락거리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오므린 손을 클로스업 해 보여주는 장면이 압권이다.


 데블린이 나타나 앨리시아의 손등에 키스하는 순간 그 열쇠를 눈치 채지 않게 그의 손에 교묘하게 전달하는 앨리시아. 이들의 행동을 질투심에 불타서 은밀하게 감시하는 세바스천의 눈을 피해 둘이서 칵테일을 마시러 가는 사이에, 샴페인을 원샷으로 들이키고 사라지는 카메오 역의 히치콕 감독이 등장한다. 이때가 영화 시작 후 60분이 지났을 때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망을 보는 사이 와인 창고를 조사한다. 그때 데블린이 실수하여 와인병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 병엔 술이 아닌 이상한 검은 모래가루(나중에 우라늄석으로 판명된다)가 들어있다. 샘플을 채취한 후 그 자리에 다른 와인병을 채워놓고 깨끗이 정리하고 문을 잠그고 나온 데블린과 앨리시아. 그때 세바스천이 모자란 샴페인을 가지러 접근해 오자 관심을 돌리기 위해 둘은 키스를 한다. 위기를 넘긴 데블린은 그 집을 무사히 빠져나온다.


 한편 와인 저장고 문을 열려고 열쇠고리를 꺼집어 냈으나 열쇠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세바스천.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없어진 열쇠가 고리에 도로 끼워져있다. 홀린 듯 앨리시아가 침대에 자고 있는 동안 그가 포도주 창고에 내려가 보니 선반 위에 있는 포도주가 모두 1934년산인데 한 병만 1940년산 레이블이 붙어있다. 이상히 여겨 선반 밑바닥 안쪽을 손으로 훑어보니 1934년 레이블이 붙은 깨진 유리 파편과 검은 모래가 흩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세바스천!


 그는 둘의 관계를 의심해보다가 드디어 앨리시아가 미국의 첩보원임을 알게 된다. 이제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 세바스천. 그의 동료 나치들에게 자기의 실수를 실토하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앨리시아도 위태롭게 될 터이니, 일단 이 상황을 어머니와 먼저 상의하고 도움을 청한다. 그녀는 앨리시아에게 독이 든 커피를 마시게 해 서서히 죽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녀를 방에 가두고 나치 관계자들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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