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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배경 영화(II)-‘영광의 깃발’(Glor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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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다음 날, 쇼 대령과 포브스 소령이 여단장 사무실을 찾아간다. 하커 여단장과 몽고메리 대령의 불법적인 행동을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위협한 결과 54연대는 드디어 전투 참여를 허락받게 된다.

 

 그런데 쇼 대령의 구체적인 불법 사례 언급 중에 "몽고메리 대령 지휘 하에 '콤바히'로 가는 도중에 34개 저택이 약탈됐고 방화됐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실상이 왜곡된 것 같아 여기 부연 설명을 늘어놓자면 이렇다.

 

 1863년 6월 2일 제임스 몽고메리 대령이 이끄는 북부 연방군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콤바히강 근처의 여러 플랜테이션을 습격, 이른바 '콤바히 강 습격(Raid at Combahee Ferry)' 작전을 수행했는데, 노예해방 인권운동가이자 여전사인 터브먼의 활약과 도움으로 해안 상륙 후, 플랜테이션에 불을 질러 남부동맹군의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고 수천 달러어치의 식량과 보급품을 손에 넣었다. 이것은 오히려 그의 공적 중 하나로 기록된다.

 

 '콤바히 강 습격' 때 터브먼은 남북전쟁 중 무장 군대를 이끌고 공격 작전을 수행한 첫 번째 여성으로, 세 척의 증기선을 남부동맹 영역으로 인도하여 그 지역의 노예들 700여 명을 태워 구출했다. 남부군이 막 현장에 도착했을 때, 증기선은 이미 노예들을 싣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보포트를 향해 출발한 후였다. [註: 메릴랜드 주 도체스터 카운티의 노예출신이었던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1822~1913)은 필라델피아로 탈출 후, ‘지하철도’라는 반노예 운동가 네트워크와 아지트를 통해 노예 70여 명을 구하였고, 1850년부터 1860년까지 '지하철도'의 차장으로서 남부에 들어가 300명이 넘는 흑인들을 북부로 탈출시킨, 별명이 '모세'인 전설적인 여장부이다. 자유인이 된 많은 흑인들은 대부분 연방군에 합류하였다.]

 

 1863년 7월 16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제임스 섬 전투(Battle of James Island). 54연대는 그들의 첫 전투에서 남부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 이 전쟁 중 시얼리스가 트립 일병을 구하다가 부상을 입는다. 쇼 대령은 트립 일병에게 전투 중 연대깃발을 사수하는 영광된 임무를 부여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 이유는 전쟁으로 노예에서 해방되어 더 나은 삶을 보장해줄 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곤 롤린스 상사에게서 들었던대로 "우리 몫을 다하고 죽는 일뿐이겠죠."라고 말한다.

 

 장면이 바뀌어 조지 스트롱 장군(제이 O. 샌더스)이 쇼 대령에게 찰스턴 항구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모리스 섬을 공격하고 그 방패막인 와그너 요새(Fort Wagner)를 먼저 점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와그너 요새는 10인치 콜롬비아드 포를 비롯하여 박격포, 곡사포 등 막강한 화력과 약 1천명 가량의 수비군이 진을 치고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어 유일한 접근로는 모래로 된 좁은 언덕 길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한번에 한 부대씩 진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선봉이 겪을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격은 내일 해질녘에 정면 기습을 감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하는 스트롱 장군. [註: 조지 크로켓 스트롱(George Crockett Strong, 1832~1863) 장군은 버몬트 태생으로 1857년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 출신이다. 1862년 11월에 54연대를 포함한 자원부대의 여단장이 되어 1863년 7월 18일 2차 와그너 요새 공격을 리드하던 중 부상을 입어 뉴욕시로 후송되었으나 파상풍에 걸려 그 해 불과 30세로 사망했다. 사후 준장에서 소장으로 승급됐다.]

 

 이에 쇼 대령이 54연대가 선봉에 서겠다고 자원한다. 전투가 있기 전날 밤, 흑인 병사들은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개중에는 트립 일병도 있다.

 

 먼저 샤츠가 기도한다. "내일 우리는 전투에 나갑니다. 하느님, 제가 한 손으로 소총을 들고 다른 손엔 성경을 들고 싸우게 해주세요. 제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죠. 물에서든 땅에서든 죽는 건 상관없습니다.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전능하신 예수님의 축복이 나와 함께 하리라는 것을요. 두려움은 없습니다. 아멘."

 

 다음은 주임상사 롤린스가 기도한다. "주님, 당신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오늘밤 당신 앞에 섰습니다. 당신의 은총과 축복에 감사합니다. 저는 도망쳤지만 제 가족과 친척은 아직 노예 신분입니다. 오늘 밤 당신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내일 저희가 죽게 된다면 가족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모든 압박의 굴레에 저항해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밤 아버지 당신 앞에 섰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같은 축복이 있기를, 아멘!"

 

 이번에는 롤린스의 간청에 못이겨 트립 일병이 일어선다. "… 난 가족도 없고 엄마를 죽였는데… 좀 우스꽝스럽네… 음, 난 너희들을 알아, 너희들 모두를! 너희들은 내 유일한 가족이야! 그리고 너희들과 54연대를 사랑해!"라며 떠듬거리는데, 그의 눈과 시얼리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내일 무슨 일이 있던 큰 문제는 아닐꺼야. 왜냐면 우린 남자니까, 그렇지? 우린 남자야… 제기랄!"

 

 그러나 비로소 동료들을 배려, 포용하는 그의 말과 태도에서, 전투에 나서는 54연대 병사들은 사기충천하고 밤은 깊어만 간다.

 

 날이 밝았다. 1863년 7월 18일. 정장을 한 쇼 대령이 출격에 앞서 하퍼스 위클리의 에드워드 피어스 기자에게 개인 편지와 물품 등을 맡기며 "내가 쓰러지더라도 자네가 여기서 봤던 걸 잊어선 안되네!"라고 비장하게 말한다.

 

 그리고 "기수가 쓰러지면 누가 연대기를 들고 이동하겠나?"고 묻자 토머스 시얼리스가 자청하고 나선다.

 

 이제 말에서 내려 함께 걸어서 진군하는 쇼 대령. 와그너 요새 진격에 앞장 선 54연대는 모래언덕에서 은폐, 엄폐를 하며 서서히 이동했다가 땅거미가 깔릴 무렵 공격을 개시한다. 하지만 쇼 대령은 부하들의 전진을 독려하던 중 수많은 총격을 맞고 사망한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앞으로! 54연대 앞으로!(Forward! Fifty-Fourth, Forward!)"였다.  (다음 호에 계속)

 


▲ 격전을 앞둔 전날 밤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린다. 롤린스 주임상사(모건 프리먼)가 기도한다. "하느님, 모든 압박의 굴레에 저항하여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 와그너 요새의 유일한 접근로는 모래로 된 좁은 언덕 길밖에 없기 때문에 한번에 한 부대씩 진입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선봉이 겪을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 1863년 7월 18일. 2차 와그너 요새 공격 직전에 대열을 갖추고 쇼 대령을 기다리고 있는 매사추세츠 제54보병연대의 늠름한 모습.
 


▲ 쇼 대령은 부하들의 전진을 독려하던 중 수많은 총격을 맞고 사망한다. 그의 마지막 말은 "앞으로! 54연대 앞으로!"였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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