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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꿈(Elegant Dream) (4)
young2017

(지난 호에 이어)

관점의 차이를 극명하게 전하는 이야기다. 코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가 밧줄 같다고 하고,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가 기둥 같다고 하고, 귀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가 넓적한 부채 같다고 한다. 편협한 견해로 전체를 보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인식으로 인한 부분적인 인식을 완전한 이해의 인식으로 생각해 버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어젯밤 꿈의 그 코끼리는 그저께 밤 모닥불 앞에서 누군가가 들려준 코끼리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야기는 인생에서 어느 때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입술에 흘려오는 꿀 맛을 즐기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한 사람이 아무것도 의지할 데 없는 막막한 광야에서 무섭게 달려드는 코끼리에 쫓기고 있다. 그는 그 코끼리를 피하려고 숨을 곳을 찾는다. 그때 그는 저 멀리서 펑퍼짐한 붉은 바위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하여 사력을 다하여 달린다.

그 곳에 다다라보니 그것은 바위가 아니라 붉은 꽃들이 만발하여 꿀벌들이 윙윙대며 꿀을 따고 있는 꽃나무 무더기다. 그것에 저 무섭게 달려드는 코끼리로부터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절망의 순간에 그 옆에 한 우물이 있고 든든한 동아줄 같은 칡넝쿨이 그 우물 속으로 드리워진 것을 본다.

반가워서 그는 일단 그 칡넝쿨을 타고 우물 속으로 내려가다 멈추고 위를 본다.

그 코끼리를 우선 피했다. 달려온 그 사나운 코끼리는 씩씩거리며 긴 코로 그를 후려치려 몇 번을 시도하지만 그에게 미치지 못하고 만다.

그 코끼리는 우물 주위를 서성대고 있다. 이제 그는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며 우물 밑을 바라보다 깜짝 놀란다. 그 우물 밑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쥐고 있는 칡넝쿨을 다시 굳게 부여잡고 미끄러운 우물 벽을 의지하며 오르는데, 위에서는 커다란 들쥐 한 쌍이 어느새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어서 내가 우물 위에 오르기도 전에 넝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다.

그때 저 위의 꽃나무 무더기에서 꿀 채집하는 꿀벌이 흘리는 꿀이 그의 입술에 주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 꿀을 혀로 핥으며 그 꿀의 달콤함에 취하고 만다.

그는 자신의 급박한 상황을 잊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달려오는 죽음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한 회원이 모닥불 가에 둘러선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이런 달콤함에 취해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긴박감이 모닥불 가에서 들었던 단어들과 같이 떠 올랐다. 행운, 준비, 기회, 도전, 그리고 꿈 등등이.

"행운이란 준비와 기회가 만나는 때와 지점"이라고 랜디 포쉬(Randy Pausch) 교수가 젊은 날에 암으로 죽어가며 아직 그의 어린 아이들에게 먼 훗날(녹화된 것으로) 들려주기 위하여 그의 마지막 강의(The Last Lecture)에서 말했다.

어느 때가 나의 행운인가? 나는 인생에서 어떤 준비를 해왔는가? 내가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내게 무엇이든 가진 꿈을 펼치게 해주시던 부모님이 나의 꿈 많은 시절에 계시었던 것이 내 행운이 아니었던가?

"모닥불 피워 놓고"의 선율이 그것을 부른 가수 박인희의 목소리와 함께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드리운 천정에 꿈결처럼 흐르는 듯 하다.

다시 내 마음의 창이 밝아 오고 있다. 나는 지금 현실의 꿈이 있는가? 나는 내 인생을 다 살아버린 것처럼 생각지는 않고 있는가? 뭔가 도전하고 싶은 욕망은 있는데 그것의 꿈이 없기에 에너지가 모이는 대로 말로만 탕진하고 있지는 않는가?

엄마가 아빠에 대하여 말한 세가지 C가 들은 단어들을(CALM, CONFIDENT, COMPASSIONATE) 차근히 생각해 봐야겠다. 나도 우선 꿈을 갖자. 미국의 영화 배우 짐 케리가 먼 훗날의 성공을 향하여 그가 자신 스스로에게 발행한 수표를 보물 섬의 지도라 한다면, 켄터키 푸라이드 치킨 체인 레스토랑의 창업자가 60대에 1009번의 도전에 성공한 사례를 보라. 나는 지금부터라도 우물쭈물한 삶을 살지 말아야겠다.

어느 날 우리가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Niagara On The Lake)에 있는 버나드 쇼 극장 앞을 지날 때 누군가가 그의 묘비명에 써졌다는 문구를 말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우물쭈물하다가." 이것은 버나드 쇼가 침대에 누워 죽음을 바로 앞두고 있을 때 방문한 그의 친구에게 말하여 부탁한 것이란다. 그는 생전에 극작가로써 좋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사후에는 타국의 한 도시에 그의 이름으로 남긴 극장에서 그의 작품들을 공연하고 있는데도 그는 우물쭈물 살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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