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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 (9)
young2017

 

 

(지난 호에 이어)
엄마가 나를 부를 것 같은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내게 강제로 그렇게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를 것 같다. 나는 엄마의 가슴에서 뭔가를 느끼고 싶었다, 이제 꺼져버린 가슴이지만, 그 가슴으로 엄마가 느끼고 엄마에게서 일어났던 모든 것을 느끼고 싶어졌다.


한 줄기 삶의 바람이, 그 것이 절망이든 희망이든 엄마의 가슴에 불어오면 그것은 갈망으로 엄마의 가슴에서 삭아져서 열망으로 자라고, 그것은 의미와 가치로 그리고 보람으로 현실에서 나타났을 것이다. 


지금 내게 보여진 엄마의 가슴은 그렇게 느껴오고 일어나는 일어남의 변화가 정지된 느낌으로 내게 전해지고 있다. 내가 엄마와 이제부터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없음에서 오는 절망감에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를 때, 그 여직원이 이런 상황에 많이 익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손놀림에 어떤 감성의 떨리는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 감정의 파도에 따라 떠 흐르는 조각배처럼 느껴졌다. 나는 발치 쪽으로 내려가던 회색 빛 가운을 명치 부근에서 멈춰 버렸다. 더 이상은 엄마 보기가 벅찰 것 같아서였다. 작아진 어깨, 작아진 가슴을 보기가 아팠다. 같은 엄마의 죽은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느 순간에는 나무토막 같았고 또 다른 어느 순간에는 내 아픔을 느끼는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는 아픔의 근원지처럼 느껴졌다.


내가 체코 여행 중에 프라하 시내의 어느 길에서 마주친 그 나무, 마치 그 나무가, 수령이 백년이 훨씬 넘을 것 같은 그 나무가, 나를 만나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그곳에 서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조금 후에 느낀 그 나무는 그저 거기에 서있었을 뿐이었고, 내가 그 옆을 우연히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라는 느낌 ㅡ 엄마의 죽음에 대한 나의 이런 것과 같은 것인가. 분명하면서도 꿈결 같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가 벌써 몇 해가 되었다. 나는 지금 남편이 어릴 적에 보고 자랐던 그의 고향집에 와서 시어머님과 같이 지내고 있다. 그가 엊그제 보낸 이메일이 떠오른다.


“. 그리고 내가 살던 시골에 가서 어머님과 함께하며 내가 살며 바라 보았던 산들을 보겠지. 마당에 서서 보면 남쪽으로 동그마니 큰 산이 두승산, 오른쪽 ‘山’자처럼 생긴 산이 천태산, 두승산 왼쪽이 새암실산, 그리고 그 왼쪽 멀리 써래발 같이 생긴 봉우리들이 내장산 써래봉이오. 옛날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기념비가 우리집에서 정 남쪽으로 보였는데 나무에 가려서인지 저번에 집에 갔을 때 보이지 않습디다.“


지금 보니 시어머님 속에 친정어머니가 살아계신다. 돌아가신 모든 어머니들께서 살아계신 모든 어머니들 안에 현현하고 있는 것인가, 내 안에도?

 

 

보아라,
저ㅡ 날리는 꽃잎들을,
저들은 곧,
너에게 감사의 열매를
올리리니,
너는 삶의 의무를
다-하라.

 

저마다가
아름다움은 홀로이
가꾸지만
그것이 드러남은
만남에서이다.

 

품위는 가꾸는 자의 몫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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