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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7)
young2017

 

 

(지난 호에 이어)
때로는 무심한 것이 괜찮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남편이 시어머님과 작별인사하며 전화 끊을 때에서 울먹이는 듯했다. 참, 저 사람도 부모에 대한 감정이 있구나.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나?


어쨌든 엄마 장례식 이후 일요미사는 처음이니 성당에 가서 감사의 예를 올려야 하는 날이다. 남편 이야기가 장례위원장님 말씀이 맨 앞줄에 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런데 큰 아이가 성당으로 떠나기 한 시간 전에도 집에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한 영화사의 시나리오 작업 진행 중이어서 오늘 일요일 아침의 이른 미팅에 참석 중이었다. 


혹시 시간 내에 오지 않고 불참할까 봐서 내가 불평하는데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한다. 표정이 아직 시간은 있고 시간되면 올 테니까 걱정 말라는 얼굴이다. 성당에 들어가면서 엄마 장례미사 날 이곳을 이렇게 들어가던 때의 장면이 선히 떠올랐다.


그날 아침은 바람이 불고 구름이 짙게 흐르고 있었다. 장의사에서 집으로 보낸 리무진에 올랐다. 큰 언니, 동호, 동현이 그리고 나, 남편은 아침 일찍 가게에 갔으니 그곳으로 시간 맞추어 오기로 되었다. 


차에 오를 때 전날 장의사 직원들이 이곳에 차를 세우고 엄마를 모셔가던 생각이 떠 올랐다. 검은 양복 입은 두 젊은 직원이었다. 하나는 얼굴이 찐빵처럼 두리뭉실하게 생기고, 또 한 명은 아주 예리하게 생긴 직원이 엄마의 방 엄마 옆에서 우리 가족에게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엄마를 모셔갈 것인가를 알리며 그 계획에 이의가 있는지 동의할 것인지를 묻는다.


우리 가족들의 감정이 둥 떠있는 사람에게는 그 예리하게 생긴 직원이 깨우는 것 같고, 감정이 슬픔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는 그 두리뭉실하게 생긴 직원이 편한 마음으로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기분이 들게 누군가가 일부러 그렇게 짜놓은 듯이 보였다. 


그런 것이 그 순간에 내게 확연히 보인다는 것이 내가 지금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의식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여기에서 이 말을 마친 후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세세히 말한다. 


이 말을 마친 후 차에 가서 엄마를 방에서 날라갈 도구들을 가지고 와서 어떻게 엄마를 실을 것을, 그리고 그 전에 어떤 종교적 예식이 필요한가를 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일어날 일을 그들이 정중히 세세히 말했듯이 그렇게 정중하고도 치밀하게 그리고 천천히 엄마를 가져온 미는 들것에 실어 나갔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엄마가 들것에 실려 방을 나갈 때, ‘저것’이, 쟈크 채워진 천으로 된 백에 들은 것이 엄마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부엌을 통과하고 리빙룸을 통과할 때, 전에 엄마가 아파서 긴급시에 병원에서 온 구급 요원들이 엄마를 구급대 위에 싣고 가던 모습이 떠 올랐다. 


그 때는 불안과 걱정과 기대하는 마음이 그리고 아픈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감정이 없다. 생각보다 아직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 엄마가 이렇게 돌아가시면 눈물이 나고 가슴 아플 줄 알았는데 그런 감정들은 다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마음이 그 저 텅 빈 것 같다. 


마음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도 생겨날 것 같지도 않은 것 같다. 눈물이라도 나야 할 것 같은데, 그럴 때 리빙룸을 막 통과할 때에는 지난번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 구급대위에 실려오면서 웃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신이 완연히 살아나서 마치 하얀 꽃이 활짝 피어 웃는 듯 하였다. 그러했던 엄마가 지금은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쟈크 채워진 천으로 된 백 속에 들어가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겐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런 감정이 어디에, 무엇에 위배되지 않는지 ㅡ 양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혹은 모녀간에 지녀야 할, 가져야 할 어떤 것이라든가, 뭐 어떻게 표현하든 등등, 도무지 아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니, 뭔가 어떻게 해야 할 때 할 수 없어서의 막막함 같은 것도 없다. 나는 그저 엄마가 실려가는 곳으로, 아이들과 남편이 가는 곳으로 따라만 가는 것이다.


그런데, 반짝거리며 윤이 나는 시커먼 장의차의 뒷문 앞에서 그들이 엄마가 실린 들것을 세우고 그 차의 두 문을 여는 순간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내 감정은 슬픔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픔의 바다인 것이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갈 때 느껴지는 생명의 어떤 긴박감이나 불안이 걱정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이 물건처럼 장의차에 실려가는 엄마가 그 차 안에서, 그 천으로 된 차가운 백 안에서 실려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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