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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6)
young2017

 

 

 

(지난 호에 이어)
병상에서 엄마는 가끔 그리운 고향의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선지 그립고 애닯음이 깃들인 목소리로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때로는 쉬었다가 부르는 노래는 어떤 절실함의 극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엄마의 노랫소리도 엄마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무의식 중에도 엄마의 방에 대한 나의 주목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 창 밖이 훤해지고 날이 밝자 그런 주목이 점점 밝아져 감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남편이 잠에서 깨어서 화장실에 갔다 오고, 나는 이제 그만 일어나서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커피 물을 끓이려고 부엌에서 손잡이가 길게 달린 작은 냄비 들고 수도꼭지를 틀고 있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한번 두번 누굴까 생각하는 순간, 시어머님이신가, 큰 언니인가 하는 순간에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헬로우,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어머니세요.” 시어머니이신 것이다. 남편과의 대화 내용이 훤하다.


“할머니 어쩌시냐?” 를 물으시며 나의 엄마에 대한 안부를 물으시는 것 같다. “돌아가셨어요. 춘화한테 못 들으셨어요?” “아ㅡ 들은 것도 같다. 내가 시방 요새는 들은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 하시는 것 같다.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남편이 나를 부른다. 전화를 받아보라는 것이다. 시어머니께서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것을 나는 안다. 내 목소리를 듣고 그 분은 예의 감지력으로 그 동안 내가 잘 지내고 있는가, 아들과의 사이는 어떤지를 파악하시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 시어머니의 모든 것, 강조하여 그 분의 모든 것이 나는 좋다. 뚜렷이 뭔가를 주장하시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씀을, 의도를 전달하고 나를 배려 하시는 것이 항상 나는 좋다. 


시어머님은 고국에 계시고 나는 외국에 있으니 나는 시어머님과 연을 맺은 지가 30년이 되는데도 한국에서 몇 번 여기서 한번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또 문득 시아버님과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시아버님의 여러 말씀 중에 유난히 가끔 떠오르는 것은 “아들 하나 잃어버리는 구나.” 하시었다. 


그 분 뵌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인생에서 많은 일들이 잊혀지고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겠지만, 그 말 한 문장은, 내가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가끔 내 친정 아버지의 기억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오늘 이 순간에 돌아가신 분들이 순간순간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 외삼촌들, 숙모들, 큰고모, 이북에서 한꺼번에 돌아가셨다는 한 번도 뵙지 못한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그리고 사촌 오빠. 이북에서 돌아가신 이분들,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그러나 핏줄로 맺은 인연인데도 불구하고 볼 수 없는 곳에서 살다가 죽고만 사람들. 보지 못한 이분들도 어떤 영상의 이미지로 스쳐 지나간다. 


시어머님의 목소리, 그 분 얼굴이 보여주신 그 분 삶의 어떤 것들이 마치 바로 앞에서 보이듯이 피어 오르며 사라져간다. 아마도 남편한테서 내가 엄마가 돌아 가신 뒤에 기운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위로 하시며 기운 차리라는 것이다. 


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삶에 용기가 생긴다. 시어머니는 항상 나를 기운 차리게 한다. “늬가 시방 얼매나 마음이 허망허것냐! 시방 니 맴이 맴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지 기운을 채려야 헌다 ㅡ 잉.” 엄마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 분이 안쓰러워진다. 


남편이 전화 끊기 전에 자기에게 바꾸어 달란다. 나는 시어머님께 나의 작별 인사를 올리고 남편에게 수화기를 건네준다. 시어머니께서 저쪽에서 뭐라고 하신지 남편의 말을 들으면 짐작이 간다. 


“어머니 그것 이에요. 이제 꼭 필요한 일만 생각하시고, 푸른 소나무도 보시고, 맨날 일만 하시느라고 그 아름다운 소나무 한번, 파아란 하늘 한번 제대로 보시지 못했을 텐데….” 


저쪽에서 시머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하머 하머 그리여, 이젠 하늘도 보며 솔낭구도 보며 살것이고만.”


남편도 많이 바뀌어 간다. 어떤 면으로 그의 관계에 대한 인생관 ㅡ 오는 것 막지 말고 가는 것 잡지 말라. ㅡ 이 한때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남편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 쉽게 사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 되었다. 그가 부모형제에게 참 무심하구나 생각되었다. 


시집 식구들도 남편이 무심하듯이 무심하였다. 시집과의 불화, 고부간의 갈등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난무했지만 내겐 별로, 시누이들과 시동생 그리고 시 아주버님께서 한마디씩 건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서운할 정도였지 화가 나거나 싸움하여 앓아 눕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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