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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2)
young2017

 

 

 

(지난 호에 이어)
나는 놀랐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엄마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내가 미웠다. 그러나 내 몸은 그렇지 않느냐.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누워있지 않았다. 의지대에 의지하며 걸어 다니며 화장실에도 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 때문에 황폐해 가고 있다고 느꼈었다. 그때가 지난 가을이었다. 내 미움과 내가 미워하는 그 마음을 미워하며 오기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씻기로 했다.


뒷마당에 있는 여름이 지은 무성한 푸르름의 눈물이 가을을 씻어내고 있었다. 방울 방울의 눈물에 푸름이 씻겨나고 누렇게 그리고 붉게 변하여 가고 있었다. 바람은 이제 여름의 눅기를 빼가고 뒷마당에 가뿐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무언가가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었다.


아 ㅡ 씻어야 한다. 황폐해져 가는 얼굴보다 숭고한 피 속에서 흐르는 황폐한 마음을 씻어야 한다. 존중해야 할 것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내 피 속에 흐를 수가 없다. 황폐해져 가는 마음을 씻고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엄마 발 밑에 놓고, 엄마의 양말을 무조건 벗기고 있었다. 회전의자에 앉아 망연히 가을 바람에 젖어 떨어지는 가을 낙엽을 바라보던 엄마가 나를 본다. 내가 하는 짓을 내버려 둔다. 


벗긴 엄마의 두 발을 들어서 대야에 담근다. 엄마는 내 마음을 알고 몸을 뒤로 젖히며 두 발 드는 것을 도와준다. 의자가 뒤로 약간 젖혀지면 두 무릎을 올리기가 편해진다.

그저 엄마의 두 발을 번갈아 씻기고 있었다. 


잊어버린 비누를 가져오고 비누칠하고 발을 그냥 물에 놓아버린다. 다시 한 발을 들어 허공에서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엄마의 발을 닦고 있었다.


나는 나를 씻고 있었다. 엄마의 눈에 생기가 나고, 몸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망각의 강물에 잠긴 머리를 물 위로 들고 헤엄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제 가을 바람을 눈으로, 창 밖의 가뿐한 바람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게 아직 부드러움이 남아있는 엄마의 발은 어릴 적 엄마의 젖을 만지던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엄마의 품이 메말라 내 가슴을 적시기라도 하는지 황폐해가는 내 마음이 적셔져 가고 있었다.


엄마의 두발을 들어 대야 옆 마루 바닥에 놓은 마른 수건 위에 놓았다. 의자가 쉽게 돌아가는 바람에 도움이 되었다. 마른 수건으로 두 발을 닦을 때 엄마는 젖 먹고 난 아이가 만족 하듯이 기뻐하였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즐거운 얼굴이 내 가슴의 메마름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었다. 


자라나는 화(禍)의 파편을 뽑아내 버렸다. 내 아이가 젖 먹을 때 기뻐하는 것처럼 엄마가 기뻐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ㅡ 시원하다.” 말했다. 나도 시원해졌다. 엄마가 좋아하는 기쁨을 내가 보는 기쁨은 무엇보다 큰 것이었다. 


내 마음의 뜰은 무한정 넓어졌고 거기에는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노래하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 엄마는 가벼운 미소로도 나를 기쁘게 하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창 밖에서 떨어져 날리는 낙엽이 아름답다.


엄마는 병상에서 계속 주무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원히 주무실 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음 그릇이 놓인 이동 탁자를 침대로 가져가서 엄마를 불러 보았다. 


간병인으로 와 있는 클라빌이 옆에서 “미세스 홍”하고 내가 엄마 부름을 거든다. 엄마가 두 눈을 뜬다. “엄마, 내가 누구야?” 하고 부르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네가 누구긴 누구야 내 딸 순경이지.” 하신다.


그러더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하신다. 힘겨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순수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한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아느냐?” 


보통 때 같지 않게 완전한 문장을 사용한다. 그 속삭이는 어감에 담긴 순결한 느낌의 부드러움, 따뜻함 그리고 뭔가 나를 위로하는 듯한 느낌은 전에 가져 보지 못한 것이다. 


힘이 없어서 하는 말에 정성의 기운, 말로 사랑을 표하고 싶은 온 정성이 실렸기에 다른 느낌으로 들려오는 것이다. 내 두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마치 내가 엄마의 눈으로 우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바라보니 엄마의 두 눈은 미소 짓고 있었다. 아집도 집착도 강요도 없는 진술, 그야말로 최후의 순수한 진술을 하는 듯이 느껴져 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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