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335 전체: 319,004 )
이화(梨花)(1)
young2017

 

 

 

거울 속에서 떨어지는 하얀 배 꽃잎들, 시공을 거느리는 침묵이 자유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고요히 떨어지는 꽃잎들에게 나의 의식이 집중되는 순간 마치 방안의 모든 사물들이, 나와 같이 그 꽃잎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전생(前生)이 있었다 해도 기억할 수가 없고, 내생(來生)이 있다 해도 가볼 수 없으니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천생 지금 이 금생(今生)에 잘 살아야 할 것이다. 

 

 

 

보아라, 
저- 날리는 꽃잎들을, 
저들은 곧, 
너에게 감사의 열매를 
올리리니, 
너는 삶의 의무를 다- 하라. 

 


저마다가 
아름다움은 홀로이가꾸지만 
그것이 드러남은 
만남에서이다. 

 

품위는 가꾸는 자의 몫이다.
 

 

 

 

거울 속에서 날리는 배 꽃잎들, 순간 이 말이 떠올랐다.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그리고 또 엄마의 장례식에서 남편의 헌사에 들은 말, "아름다움은 홀로이 가꾸지만 그것이 드러남은 만남에서이다."가 떠올랐다.


하얀 배 꽃잎들이 거울 속에서 떨어지며 하얀 경대 바닥 위에 떨어질 때, 아까 엄마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엄마의 방에서 남편이 하얀 배꽃 가지들이 꽂힌 화병을 방바닥에서 경대위로 옮겨 놓는 중이다.


하얀 배꽃들이 짙은 마루 바닥 위에 떨어지고 있는 것을 옮기는 순간 보고 있었지만, 유독 거울 속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꽃잎들이 지닌 어떤 무상함이 현실도 꿈도 아닌 은유의 나라에 온 느낌을 주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나와 엄마의 사이가 죽음과 삶의 사이인가 하는 막연한 느낌으로, 아니면 엄마가 그 아침 따뜻한 손이 가슴이 점점 차가워지던 그 순간 죽음으로 가시는 길에서 오는 나의 허망감 때문일 것이다. 


이미 다 타버린 엄마는 지금 차가워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배꽃 같은 마음에 남겨진 내 가슴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일 것이다. 엄마는 이미 현실에서 사실상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이제 엄마 아빠에게 가고 싶다.”는 말, 그 동안 점점 쇠약해져 가면서 쓰는 단어의 변화는 “돌아간다”는 말로 나를 너무 실감나게 해왔다. 그리고 내게 남긴 마지막 말, “사랑”.


그날,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오신 날 엄마는 전 같지않게 정신이 맑으셨다. 신부님이 오셨다는 말에 눈을 점점 크게 뜨시며 미소 짓는 모습은, 어린 사자새끼가 잠에서 깨어나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 순간에는 엄마 현재의 마른 입술과 전의 도톰한 입술이 겹쳐 떠오르고 이슬이 맺힌 어떤 수술 많은 꽃 봉오리가 이슬이 무거워서 고개 숙인 모습도 떠올랐다.


엄마는 그 분들께 주목하는 느낌이 들었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때 엄마가 분명히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신부님과 수녀님들께 작별 인사를 또렷이 하였다.


그 다음날 엄마가 아픔에서 깨어나실 때, 엄마가 더 살았으면, 아니 더 건강해져서 적어도 이번 생일을 맞이 하였으면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엄마는 어제보다 더 혼미해지고 기운은 더 적어졌다. 손을 잡을 때 엄마가 내 손을 잡고 힘 주는 힘이 적어졌다는 것으로 엄마가 더 약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바램과는 달리 현실은 엄마가 매일 매일 약해져 가고 작아져 갔다. 엄마가 그렇게 작아져 갈수록 엄마의 언어 구사에서 문장은 짧아지고 단어 씀이 점점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힘들지 않아야겠기에 엄마의 마음을 무관하게 받으려고 하면 할수록 거울 속에 비치는 내 얼굴은 태연하여 가지만 내 가슴은 더 아파갔다. 처음에 이런 마음이 들 때에는 병고에 시달리는 엄마 때문에 내 자신이 황폐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