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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현실(The Reality of the Dream)(3)
young2017

 

 

(지난 호에 이어)


나의 코 끝에 매화향기가 그윽이 흐르고 있었다. 누이의 손이 눈송이 잡으러 내미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의 아픔으로 고이어 가는 것이 내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벽돌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아버지의 서재를 지었고, 이제 아버지와 내가 나의 서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아버지와 함께 또 다른 어느 날의 기억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까마득한 날에" 처럼 까마득히, 아련히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 자, 자ㅡ 지난 시간에, 오늘은 이육사 시인의 詩 "광야"를 읽는다고 했죠?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소리 내어 누군가가 쓴 글을 낭송하는 것, 그리고 눈으로, 즉 침묵으로 읽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읽는 것이 있을까요?"


 두런거리던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모두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곧 내 자신을 생각한다. 읽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 ㅡ 소리 내어 읽고, 눈으로 침묵으로 읽고 그리고 어떻게 읽는다는 말인가? 


"그래요. 소리 내어 낭송하거나, 그리고 눈으로 침묵으로 읽으며 내 자신의 마음에서 읽히어 들려오는 또 하나의 목소리, 그런 것 ㅡ 그런 것이 있지 않나요?" 


그런 것 같다. 뭔가 또 읽히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 듯이 아이들의 뒤 꼭지가 빙그레 웃는다. 우리 반은 한 60명 쯤이었고 내 자리는 교실의 중간 뒤쯤에 있었다. 앞에 앉은 아이들의 뒤 꼭지만 보아도 내 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짐작이 간다. 


호기심 어린 표정에 뭔가 얄궂은 표정들이 나와 다른 아이들의 뒤 꼭지 사이로 선생님의 표정과 동작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는 것 말고 눈으로 침묵으로 읽는다는 것은?' 이렇게 속으로 질문하며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자ㅡ 그러면 선생님이 이 시를 한번 낭송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낭송합니다." 선생님의 낭랑하고 어딘가 우수에 찬 듯한 목소리로, "까마득한 날에"가 시작되며 "날에"부터는 우리 반 학생들의 목소리가 같이 울려 나오기 시작 한다. 


그리고 "하늘이 처음 열리고" 하며 조금 쉬는 듯 하더니,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읊고 나서 조금 쉰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한 연이 끝나고 다음 연이 시작되기 전에 숨을 멈추고 들이 마시고 나서 다음 연을 시작하는 것이 자연적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말씀 하실 때, 스쳐가는 그 순간에 '아 ㅡ 뭔가가 읽히는 것이 있구나'라고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세상이 시작된 날!' 그런 것이 떠오를 때 선생님과 우리들의 목소리는 다음 연을 시작 하고 있다.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하며 우리는 조금 숨을 멈춘 듯 하다가 다음으로 이어간다.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했으리라". 이럴 때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 옆에선 나의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느낌과 또한 내가 광야의 한 가운데 서서 바라보는 저기 저 멈추며 서 있는 산맥들이 달리는 연상과, 그리고 그런 것들을 휘 한바퀴 돌면서 서 있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아이들도 이런 어떤 것을 느끼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순간이 스쳐가고 있을 때, 선생님과 우리들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분명하면서 의지가 깃들인 목소리들이, "끝없는 광음을" 하며 이어져가고 있다. 구름의 그림자들이 빠르게 대지 위에 지나가는 것같이 느껴질 때,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할 때, 내가 대지의 예스러운 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밤과 낮에서 빠르게 피어나 지고 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이 연상되었다. 


아ㅡ 이런 것이 '눈으로 침묵으로' 그리고 읽는다는 것이구나, 라고 느껴졌다. 빠르게 천천히 빛과 어둠이 사계의 밤과 낮이 함께 어우러져 흐르는 그 속에 있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느낌, 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이런 속에서 선생님과 우리들은 이 시, 이육사님의 "광야" 전체를 읽어 내려갔다. 


우리가 그렇게 선생님과 "광야"를 읽고 나자 내게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떤 힘이었으며, 그런 것을 '기백' 이랄까 힘, 분노, 한(恨) 그리고 고요히 생각에 젖게 하는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에서 오는 고요한 그러나 비통함이 서린 침묵 같은 것.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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