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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卽 苦(생로병사의 비밀)
yeodongwon

 
 
불가에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피할 수 없는 중생의 삶(生)을 고(苦)라 정의 하고 있다. 이 고(苦)를 극복하기 위해선 열반(해탈)의 길이 있다고 가르친다. 


물론 고(苦)라 정의한다면 정답 같긴 한데, 내 경험으로 감히 말하면 생이 몽땅 고(苦)라고 만은 생각돼지 않는다. 물론 피하고 싶긴 해도 오히려 삶이라는 과정에서 함께 걸어가야 할 동무로 여겨지니 그렇게 미워지지가 않는다.


낳음(生)이 내 의지가 아니듯이 늙고 병들고 죽음(死) 또한 내 의지로 피해지지 않는 삶의 과정이지 몽땅 도매금으로 고(苦)라 생각이 아니 든다는 것이다. 


生(생) 즉 낳음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며,
老(노) 즉 늙음은 추함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이며,
病(병) 즉 아픔은 귀신(악마)의 장난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死(사) 즉 죽음은 죄 값이 아니라 엄숙한 우주적 순환 질서라 여겨진다. 


이것들은 어떤 값으로도 결코 내려놓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삶의 과정(짐)인데 고(苦)라 생각 들면 무거워 오리도 못가 쓰러질 것이다.


나는 죽어가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내가 죽음을 맞을 때의 마음은 어떨까? 궁금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죽음에 가깝게 가본, 물론 80살 내 나이의 영향도 감안해서, 내 마음은 이랬다.


약간 두렵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그렇다 해서 사(死) 곧 고(苦)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제 내 순서가 왔구나. 내가 산 80해에 남을 위해 한 것 없이 많은 죄(세상에서 말하는)만 짓고 가는구나. 그러나 내 딴에는 최선의 길을 갈망하며 살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싶은, 좀은 치사한 마음까지 들긴 했다. 


영혼이니, 천당이니, 지옥이니, 심판이니 하는 죽음 문턱 저 넘어 있다는 저 세상이 전혀 실감되지 않았다. 대신 이제 흙으로 돌아가는 구나. 이 얼마나 깨끗하고 분명한가. 그렇게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눈물 나도록 슬픈 마음이야 떨칠 수는 없었지만, 순서에 따라 가야 하는 이 길은 내가 살은 삶의 이유만큼이나 분명한 우주적 질서가 아니냐 말이다.


나도 물론 죽어 지옥은 싫다. 그렇지만 상대적 가치를 모르는, 가치가 없는 절대 좋음만 있다는 천당도 그런 이유로 해서 매력을 못 느끼니 다시 태어남도, 그래서 다시 죽음도 없는, 그냥 죽음 이대로 흙이 되는, 아무것도 없음(無)이 되는 것이 너무도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건방 떨고 있네 할까?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어 80해 삶이 살만했던 것처럼 또 태어나 살고 싶기야 마다할 내 아니지만 내 몫을 다 챙겨먹고 가는 복에 다시 태어나 산다는 것은 남의 몫의 복을 뺐어 먹는 날강도 짓이라 여겨진다.


내가 비워준 빈자리가 있어 세대에서 세대로 닮은꼴로 이어지는 생명체군(生命體群)의 질서, 이 우주질서에 기여하는 길도 되고, 뭐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는 한번 와서 가는 것만으로 깨끗이 모든 상황이 마무리 되었으면 싶은 맘이다. 


내 삶의 드라마가 끝난 막내린 무대에 무슨 미련이 있어 전생, 현생, 내생, 천당, 지옥이 어떻다 매달리는 모습, 아무래도 구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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