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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동산
yeodongwon

 

 강과 산이 다섯 번이 변한 긴 세월의 이민을 살면서 늘 보고 싶은 그리움이 두 가지가 있다. 어머니와 뒷동산이다. 고향 마을 앞산에 묻히신 어머님은 이제 뵈올 수 없는 그리움이고, 고향 마을 뒷동산은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 싶은 그리움이다.


 인디언 추장 부인을 많이도 닮은 어머니는 비록 영화배우처럼 예쁘지는 않았어도 더 없는 매력으로 내 가슴에 담겨 있고, 내가 뛰놀던 뒷동산은 비록 금강산의 풍치하고는 거리가 먼, 당시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었지만 내겐 언제나 세상에서 둘도 없는 보고 싶은 산으로 남아있다.


 나는 지리산 밑 산촌 아이였다. 눈만 뜨면 거기에 산이 그렇게 버티어 앉아 있었다. 뒤도 산이요, 앞도 산이요, 옆도 산이었다. 그 산모퉁이를 돌아 십리 길 학교를 걸어서 다녔고, 산 사이를 휘감아 흐르는 냇물에서 고기 잡고 미역 감으며 놀았고, 그 산에 올라 나무하고 풀 베고 소 먹이고, 산이 곧 놀이터고 일터였다.


 높낮이의 굴곡이 없는 펑퍼짐하게 퍼져버린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이민을 와 살게 되면서 나는 산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이민 2년 만에 어렵게 구입한 중고차를 몰고 첫 번째 시도가 교외 차 산책(Drive)이었는데, 산을 끼지 못한 들판을 달리는 기분은 무미건조했고, 그 후 좀처럼 차 산책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멋스러운 호수들이 수없이 많지만, 바다같이 망막하기만 한, 산과 어울리지 못한 호수들에 나는 별반 흥취를 느끼지 못한다.


 지구의 물을 온통 쏟아붓고 있는 것 같은 나이아가라 폭포엘 가봐도 사정은 같다. 저 웅장한 폭포 주위가 만약 산으로 드리워져 있다면 얼마나 장관일까? 산을 끼지 못한 들판 같은 평지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인데, 폭포 주위에 많은 인공시설물들을 바짝 붙여 다닥다닥 지어놓아 그마저 위풍을 망쳐놓았다.


 캐나다의 단풍 또한 나이아가라 폭포 만큼이나 명물이어서 캐나다 국기에까지 넣어져 국가적 상징으로 대접받고 있는데, 이 또한 산과 어우러져 있지 못해 평면적 구도가 주는 단조로움으로 그 색을 한껏 살리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만약 저 색깔들이 산골짝 능선을 따라 물결치듯 꽃을 피우며 타고 있다면 얼마나 장관일까. 거기에다 기암절벽 사이로 개울물이라도 졸졸 흐르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달려도 달려도 산이 보이지 않는 이곳의 들판 길, 그 직선으로 뻗은 졸리기만 한 이곳 하이웨이가 정이 가지 않는다. 몇 년 전 한국방문 때 달려 본 한국의 고속도로는 달랐다. 속력 내기는 좀 위험해도 강을 끼고 산을 휘감으며 달리는 맛은 환상적이었다. 


 내가 떠나올 60년대의 그 민둥산이 아닌, 우거진 숲으로 변한 산속을 강 따라 달리는 기분은 마치 거대한 공원 속을 산책하는 듯했다. 이곳에 그런 하이웨이가 만약 있다면 나는 아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차 산책을 즐길 것이다.


 나는 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편해진다. 생긴 모양새가 밑변이 넓은 삼각 구도라서일까. 어떤 분들은 바다가 좋다고 하는데, 나는 바다 앞에만 서면 그 망막함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바다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 모험의 대상이 되어 젊음의 혈기를 끓게 하고 진취적 개척의 배포를 키워주는 젊음의 상대로는 해볼만한데 내게 산은 언제나 어머니 품 안 같은 포근한 느낌을 줘 그 안에 안주하고 싶어지게 하는 연약한 아이가 되게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삼국통일 후 모험심이 점점 줄어들어 삼면이 바다이면서도 그 물이 무서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산속으로 산속으로 웅크려 안주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언제서부터인가 첩첩산골 그 골짝 안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우물 밖의 세상은 어떤지, 저 산너머 끝 간 데가 궁금했고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산 넘어 바다 건너 멀리 이민을 와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외부로 향한 역마살 원심력은 곧바로 향수라는 구심력의 균형법칙 작용을 받아 내 마음의 나침반은 늘 고향산천 쪽을 향해 고정되어 버렸다.


 자연에 순응하는 불교나 도교 같은 종교는 세속을 떠나 산속이 걸맞은데, 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게 한다는 기독교 문화는 대양을 무대로 세계정복이라는 야망에 부풀리게 된다. 이처럼 대체로 산 사람들이 순박하고 평화적인 데 반해 바다 사람들은 거칠고 정복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순전히 산과 바다라는 자연의 속성에 기인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여기 전혀 다른 상(像 image)의 산이 있다. 북미대륙 서해안을 따라 뻗어 내린 로키산맥이다. 나는 이 산을 가봤을 때 한마디로 장엄하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산 밑에 고여 있거나 흐르는 물도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파란 물색이 아니라 짙은 녹색으로 되어 있어 섬뜩한 느낌을 준다. 


 우리의 산이 어머니 품 안 같다면 로키산맥은 신 앞에 서 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우리의 산이 어리광을 부리고 싶고 뒹굴고 안기고 싶어지는 데 반해, 로키산맥은 그 위엄과 권위에 옷깃을 여미며 일정 거리에서 우러러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로키산맥은 살다 느슨해진 마음에 긴장을 주기 위해 가끔 찾아가 우러러 바라보고 싶고, 우리의 산은 더욱이 내 고향 뒷동산은 늘 같이 있고 싶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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