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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강물따라 역사는 흐르고>(손영호 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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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곧 그 사람’이라고들 흔히 말한다. 글 속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을 써서 발표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의 벌거벗은 모습을 세상에 내보이는 행위와 같다. 깊이 있고 아름다운 생각을 세상에 알려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난 척 하고 쓴 글이 오히려 자기의 부끄러운 속살을 만천하에 내보이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그 속에서 그 사람의 지식의 정도와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건 늘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이며, 어떤 사람이 쓴 글에 대해서 평을 하거나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한다는 건 더욱 조심스럽고 부담스런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제1권의 머리말에 써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원래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이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발문에서 따온 것이다. 그 원문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인데,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제대로 보게 되며,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는데 그렇게 모으는 것은 단순히 그냥 모으는 게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면에 적용이 되는 말인데, 특히 낯선 곳을 여행할 때에 더욱 실감하게 되는 말이다. 최근 영화칼럼니스트 겸 여행작가인 손영호씨가 출간한 책 <강물따라 역사는 흐르고>를 읽으면서 나는 이 말을 다시 떠올렸다, 책을 읽어가면서 그 속에 담긴 방대한 정보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폭넓은 지식과 견문은 책 전체를 통해서 나타난다. 낙동강 구간에서 ‘지옥의 길’이라고 할 정도로 악명 높아 일명 “빡신 고개”로 알려진 박진고개를 넘는 장면에서는 힘든 고갯길을 넘어가면서 느끼는 고통과 절망감을 풀어 나가다가 문득 “한 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이렇게 시작되는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나오는가 하면, 그 곳 시멘트 벽에 다른 여행객들이 새겨놓은 낙서들을 보다가 갑자기 영화 “The Mission”의 로드리고 맨도사를 떠올리며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나오고 세라 브라이트만의 ‘넬라 판타지아’ 얘기로 이어가는 글은 저자의 풍부한 감성과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경남 함안군 악양루에서는 중국 절강성 소주 출신 범중엄이 지은 “악양루기”가 나오고 전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을 보좌했던 주룽지 전국무원총리가 이 시를 늘 가슴에 담고 살았다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 또한 중국역사와 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여행기가 아닐까 싶다.


표충사에 가서는 그 절의 주불전이 대웅전이 아니고 대광전인 점을 지적하면서,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대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는데, 이 절에서는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모셨고, 오른쪽에 약사여래불, 왼쪽에 아미타불을 봉안한 점을 지적한다. 이어서 해인사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설명한 후 이는 중국 하남성 낙양의 용문석굴중 봉선사 석굴의 불상 배치와 똑같다고 적고 있다. 다시 한번 저자의 폭넓은 견문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예들은 책을 한 쪽 한 쪽 넘길 때마다 군데군데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에는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과 제주도를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본 풍광에 대한 단순한 서술뿐 아니라 저자의 폭넓은 견식이 빼곡히 담겨 있다. 책을 펼치면 마치 이 가을날에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놓은 것처럼 보석 같은 내용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단순 여행기의 차원을 넘어선 훌륭한 인문지리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단순히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과 제주도 일주 1000 Km를 여행한 게 아니라 가야국에서부터 신라, 백제, 고려, 조선을 넘나들고 거기서 다시 중국, 인도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1백만 킬로미터 이상의 여행을 한 듯한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글 내용도 그렇거니와 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도 자세히 보면 한 장 한 장이 예사롭지 않고 웬만한 사진작가의 작품 이상으로 구도나 선명도가 뛰어나서 저자의 미적 감각을 짐작케 한다.


이 책에 나오는 3대강과 제주도 종주여행은 사실 저자의 부인 이양배씨가 “4대강종주 및 국토종주”를 하는 과정 중 일부 구간을 저자가 곁다리로 동행하게 됨으로써 나온 기록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저자 손영호씨가 아니고 그의 부인 이양배씨라고 할 수 있다. 예쁘장하고 가냘픈 체구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와 강단이 나오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양배씨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힘든 이민생활을 하는 독자들에게 강물따라 흐르는 고향의 역사와 문화 등을 곱씹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손영호씨의 첫 저서가 산고(産苦)를 겪고 세상에 나왔으니 앞으로 영화이야기, 중국이야기도 잇달아 출판하여 저자의 그 넓고 깊은 견문과 지식을 많은 사람들이 나눠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강물따라 역사는 흐르고’ 책을 구입하실 분은 본보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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