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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권리’와 ‘죽일 권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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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권리’와 ‘죽일 권리’ 사이

 

 캐나다 연방 대법원이 ‘의사 도움에 의한 자살’ 금지가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법이 정비되는 1년 후부터는 불치병으로 고통속에서 장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의사의 도움을 받아 합법적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안락사의 문제는 1993년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을 앓고 있던 퀘벡의 수 로드리게즈재판에서 대법원이 5대4로 안락사를 불허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 수시로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논쟁이 있어 오다가 지난 2월 6일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그 입장을 바꿈으로써, 의사도움에 의한 안락사의 합법화시대를 열었다. 


 사회가 급속하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각종 난치병으로 고통 속에서 장기적인 치료를 받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이 안락사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이다. 안락사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경우는 주로 완치의 가망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장기적인 치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면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는 환자의 사연이 알려질 때이다. 이들이 ‘스스로 자기 생명을 결정할 권리’를 국가에 애원하다가 법적인 장애에 막혀 안타까워하거나 결국 막대한 비용과 불편을 감수하고 스위스 등 안락사가 허용되는 국가로 가서 자기 뜻을 이루는 사연들이 소개되면서 이 문제가 이슈가 되다 보니 대부분 뭔가 현행법이 잘 못 되었다고 느끼게 되기 쉽다. 


 사실상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이 법이 그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자기 스스로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명과 관련된 ‘의료결정권’이 보장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의 앵거스 리드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의 80%가 안락사허용을 찬성했다고 한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므로, 국가가 어떤 법을 제정할 때는 일반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 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꼼꼼히 따져서 그 법으로 인해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뜻밖의 부작용이 일어날 소지가 없는지를 철저히 따져 보아야 한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안락사문제나 사형제도에 관한 법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때로는 법률에 정해진 내용이 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이 검거되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형제에 찬성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장기복역중인 사형수의 불쌍한 어린시절 이야기와 그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질 때는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게 된다. 세상만사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영 개운치가 않다. 우선 이 번 결정이 한 명의 반대의견도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는 점이 아주 꺼림칙하다. 안락사 문제는 너무나 다양한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라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이미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는 나라에서도 여러가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도난마식으로 한 명의 반대의견도 없이 이런 결정을 했다는 사실이 캐나다대법원의 균형감각과 고민의 깊이를 의심케 한다.


 현재 안락사가 허용되어 있는 몇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문제의 복잡성과 심각성을 금방 알 수 있다. 벨기에의 경우 이 법이 시행된 후 실시한 한 조사에 의하면, 프랑드르지역에서 실시된 안락사의 32%가 환자의 명백한 요구가 없이 이뤄졌으며, 2010년에 발표된 조사에 의하면 간호사들이 관여한 안락사의 45%가 환자의 명백한 요구없이 시행되었다. 전체적으로 1/4이상의 안락사가 환자의 동의없이 시행되었다. 네덜란드의 경우 형법상 안락사나 조력자살은 현재도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1982년 로테르담법원이 규정한 지침에 부합한 경우 사실상 의사들에 의한 안락사가 용인되고 있다. 그 지침의 내용은 1) 환자가 참기 어려운 고통을 느낄 것, 2) 환자가 의식이 있을 것, 3) 환자의 요구가 자발적일 것, 4)환자에게 다른 대안을 알려주고 생각할 시간을 줄 것… 등으로 일견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들이 잘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1990년 실시한 정부 공식 보고서 (Remmelink Report)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예를 들면, 1,040명의 환자가 자신의 동의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사들에 의해서 안락사를 당했고, 8,100명이 의사들의 진통제 과다투여(통증해소가 주목적이 아니라 사망촉진을 위한 목적으로)에 의해 사망했다고 한다. 그 중 61%는 환자의 동의없이 이뤄졌다. 이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안락사가 비자발적으로 행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회복될 가망성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는 환자들을 보면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을 열어 줄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도 더 살고픈 환자의 경우를 가정해 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환자의 경우 법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게 눈치 보여서, 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언의 압력을 느껴서 자신의 진정한 속마음과 다른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을 악용하여 합법을 가장한 사실상의 살인이 저질러질 가능성도 크다. 정부차원에서도 국가적으로 의료부담을 줄이기 위해 알게 모르게 위의 네덜란드 사례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순수하고 좋은 취지로 정부가 보장한 ‘죽을 권리’가 자칫 ‘죽일 권리’로 변해 버리지 않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철저하게 고민해서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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