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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입문 세설(時調入門 細說) (2)
srkang

 

 

- 둘째 장

 

첫 장에 이어 둘째 장의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써온 시조를 서로 읽어보며 만족해 하였다. 시인은 이렇게 탄생하고 예술은 이렇게 살아나는 것 이었다. 그럼 시조형식을 배웠으니 이 시간엔 시조의 종류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시조의 종류


*평시조(단시조와 연시조가 있고, 연시조는 단시조를 이어 쓰는 것으로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야 한다.)
*엇시조(평시조의 기본형식 내에서 초, 중장 중 어느 한 장의 길이가 길어지는 형태로서 사대부 사상을 담는 경향.)
*사설시조(평시조의 기본형식을 크게 벗어나 초, 중장의 두 장이 해학적으로 길어지는 형태. 장시조 혹은 파형시조라 불림. 서민들이 양반들을 풍자, 익살, 신세한탄, 분망한 체험을 담아 해학적으로 쓰는 경향. 조선후기부터 본격적 발달로 봄.) 


현대에 와서는 평시조도 형식이 음보의 율격을 비교적 자유롭게 시조 한 수를 45자 내외에서 가감하며 쓰기는 하나 종장 첫 음보는 변하지 않는 3자의 엄격한 규칙이 있다.
길이에 따라, 형식에 따라, 시조의 종류는 많으나 모든 시조의 형식에서 종장의 첫 음보 3자는 변할 수 없다. 그렇지 못하면 시조라 불리질 않는다.


 끝으로, 시조를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문학에 입문하여 시로 혹은 수필로 그 길을 걷는 과정을 그냥 취미로 쓴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시나 수필이나 기타 문학의 형식에 맞아야 하고, 쓰는 사람의 독창적인 해석이 있어야 한다. 시인 특유의 해석이 있어야 하고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지 반복을 해서는 안 된다. 내 글의 함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수율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운율을 다스리되, 글이 은연중 살아나게 할 때 잘 조화된 시조라 할 것이다.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글을 지키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여야 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개성 강한 글을 쓰되 미숙함이 들어나지 않도록 갈고 닦아야 한다. 


또한 독자가 무릎을 치며 공감할 수 있도록 써야 좋은 독자를 만들 수 있다. 글에서 제목은 얼굴과도 같다고 여기면 될 것이다. 제목만 보고도 호기심, 의구심 등으로 읽지 않고는 지날 수 없게 마음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타자는 글을 쓰고 나서 고민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그래야 옳은 타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은 10년 후의 투자라 여겨라.


말 밖의 말, 뜻밖의 뜻, 풍경 밖의 풍경을 담을 수 있도록 늘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차 안에서도 잠자리에서도 불현듯 생각나는 한 단어를 놓치지 않고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습관화 되어야 한다.


한번 놓친 글귀나 단어는 두 번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아 애를 먹은 기억이 모두들 있으리라 여긴다. 때론 그 때의 한 단어가 부화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서서히 부화기를 거쳐 한편의 시가 탄생하게 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따끈따끈할 때 꼭 적어두는 습관을 갖는다면 좋게 발전하는 시인이 되리라 여긴다. 내 글의 독자는 나 자신이다. 아무리 흠 없이 쓴 것 같으나 발표할 때까지 2%의 부족에서 나는 늘 떨림을 갖는다. 


발표 이후의 몫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독자의 판단 위에 있기 때문이다. 많이 사색하고, 관찰하여 자극을 받아야 한다. 결핍은 창작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단어의 결핍이나 감정의 결핍을 느낄 때 길을 떠나보자. 사색하고 관찰하고 자극을 받아 더욱 기름칠을 하면, 창작의 방향키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우주의 창조자 이고 시인은 상상적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강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시간이 나를 더 향상시켰던 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젊게 사는 방법은 늘 스스로를 향상하는 시간을 갖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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