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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누구나 시인이다
srkang

 

 가을엔 모두가 시인이 된다. 시집 한 권 들고 낙엽을 밟으며 호젖이 걷다보면, 마음가득 비록 설익은 시어들이라도 내 품고 싶은 것은 내 안에 시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괴테가 청순한 소녀 베아트리체를 만나듯 나는 어느 순간, 살그머니 이끼를 들추며 피어나는 아주 작은 풀꽃 한 송이와도 눈 맞추고 싶다. 온통 오색다발의 꽃밭에 뒹굴어 온 몸에 꽃물이라도 들고 싶다. 쇼팽의 왈츠 곡을 들으며 어두워지는 들녘에 서서 사랑을 말하고 싶다. 눈으로 입으로 몸으로 붉게 사랑을 칠하고 싶다. 


 가을 단풍이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 밭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시 한 수 그리고 싶다. 펄펄 끓어 넘치는 그리움을 못 다 풀어 애끓는 나는 시인이 된다. 바람이 불고 풍경이 흔들리는 가을밤, 섬돌 밑 귀두라미는 멀리 아득한 옛 얘기로 남았으나 책장 넘기는 귀한 소리가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했거늘, 쨍그랑 소리가 나기라도 할 듯 푸른 밤하늘엔 달빛이 환하다. 창가에 서니 달빛 흔들리는 소리에 만감이 교차한다.


 시간은 세월이 되어 한없이 우리 곁을 달려가지만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선체 세월을 붙들고 있나보다. 대망의 2000년이 다가 온다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십년도 지나 이십년을 바라보고 있다. 카운트다운을 하던 십칠 년 전의 파아랗게 젊었던 나는 그때 파리 에펠탑의 빛나는 푸른 빛깔로 걸려있던 ‘2000’이란 숫자에 집중하고 있었던 기억이다. 그 푸른 젊음이 갈망하던 대망의 내 소망은 지금 얼마나 이루어져가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모두 어떤 소망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는 것일까? 희망을 갖고 오늘을 맞는 자는 누구나 소망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닻을 놓치지 않은 자는 누구나 소망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성실로서 이루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우리는 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고 나의 성실한 하루로서 채워가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이란 귀한 날은 나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확실한 나의 소유임을 알았다면, 우리는 이 귀한 하루를 주신님에게 감사하며 감사해야 한다. 정말 잘 살아야 하겠다.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이 하루를 귀하게 여길 줄 알고 보람되게 후회 없게 살아야 하겠다. 


 “生은 死를 모르고 死는 生을 모른다고 했다.” 장래는 과거를 모르고 과거는 장래를 모른다는 것이다. 천서편에서 열자(列子)가 말한다. 그렇다. 우리가 주어진 오늘에 충실할 줄 알면 神은 내일을 감추시지 않고 주시리라 믿는다. 그것이 희망일 것이다.


 가을이 저만치서 서서히 가고 있다. 이 땅에 희망의 시인들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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