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http://skang3441.tistory.com/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46 전체: 255,744 )
‘설마’의 역사 500년(34)-이승만 하야, 제2공화국 출범(하)
samkang39

 

   

 

 


(지난 호에 이어)
4.19는 이승만이 저지른 과오라기보다는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던 측근들의 야욕에서 발단된 사건이었다. 부통령 장면보다는 국회의장 이기붕이 더 앞장을 서서 이승만 박사에게 아첨을 하였으며 이기붕은 경찰은 물론 깡패조직까지 동원하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러한 사실들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는 그 비극을 목도하고 즉시 하야 하였으며, 부상을 당한 학생들의 병원을 찾아가 병문안까지 한 것을 보면, 악질적 독재자로 매도하는 것은, 오늘의 역사를 이어 가는 사람들의 또 다른 과도 편벽에서 오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5. 장면의 부통령직 사퇴 


1960년 4월, 장면은 잔여임기를 4개월 남겨 놓고 사퇴를 했다. 그는 당시 현직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유고 시에는 대통령 승계 서열 제1위였다. 


장면은 부통령직 사퇴 이유로 1)이승만이 정권을 내놓더라도 장면이 대통령직을 계승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하여 이승만의 하야를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2)부통령으로서의 도의적인 책임. 3)이승만의 불행을 이용해서 권력을 잡는다는 것이 싫어서였다. 


6. 제2공화국의 출범


1960년 5월, 민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총선거 후보 등록이 있었는데 이 때에 자유당원들에 대한 집단적 낙선운동과 선거방해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제1공화국의 고관이자 부산 정치파동의 주역으로 규탄을 받던 장택상, 이범석 등은 학생들의 후보 사퇴요구를 묵살하고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7월 29일로 예정된 제5대 총선거에 관심을 보인 미국은 친미성향이 강한 장면을 선택하였다. 7월 11일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서울 주재 미국대사에게 장문의 훈령을 내렸다. 장면을 한국의 지도자로 선발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이 점을 허정에게 주지시켜 장면에게 지도자 자리를 수락하게 하도록 은밀히 요청하라는 주문이었다. 


 6월 12일, 내각제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국무총리로 내각 수반이었던 허정을 추대하였다. 그리고 8월 12일, 국회선거를 통해 대통령 윤보선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민주당 구파이자 한민당 출신이었던 윤보선은 같은 구파 출신의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하려 하였다. 이 때문에 민주당 신파가 집단 반발하였고, 자유당은 자유당대로 민주당을 흔들기 위하여 반대하였다. 


1960년 8월18일 2차로 지명한 민주당 신파의 장면이 총리로 당선 됨으로 내각제의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되었다. 4.19혁명은 3.15부정선거의 곪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으로 끝났고, 새로운 비전이나 희망을 국민들이나 혁명을 주도한 학생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운 인적 물갈이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후에도 종전과 다름없이 신-구파의 정당 싸움이나 계속하였다. 설마 윤보선-장면 정권이 그렇게 군부의 벼락을 맞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구태의연한 제2공화국은 곧 5.16군사혁명을 거사케 한 빌미가 되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


제2공화국은 1960년 6월 15일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 불과 11개월간 존속했던 대한민국의 두 번째 공화 헌정체제이다. 제2공화국 체제는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된 후, 허정 과도정부를 거쳐 6•15 개헌에 의해 설립된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의원내각제 기반의 헌정체제이다. 대통령은 윤보선, 국무총리는 장면 이었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붕당정치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여 국민들의 눈총을 받아 오다가 불과 11개월 만에 5.16 군사혁명에 의하여 제2공화국의 막을 내렸다.


 이화장(梨花莊)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초석인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거했던 이화장은 현재 이 전 대통령의 기념관으로 재탄생 되었다. 이화장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과 사적관, 조각당과 생활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조각당은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초의 내각을 구상 및 발표한 곳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학생혁명으로 하야를 한 이후 잠시 이 사저에 머물다가 미국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났고, 하와이 호놀룰루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으로서의 예를 갖추어 동자동 현충원 국립묘지에 영안을 모셨다.


이화장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1번지에 위치한 건축물로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집은 해방 후 귀국한 이승만이 안정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불편한 생활을 하는 것을 알게 된 권영일 등 33명이 돈을 모아 1947년 이 집을 사서 기증했는데 이때부터 이화장이라 불렀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