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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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노모의 마지막 편지
samkang39
2013-08-13
외로운 노모의 마지막 편지
이민을 와서, 문화권이 아주 다른 세상에 와서, 손자손녀들과 언어 소통마저 힘들은 가정이 되었기에 이씨 할머니는 거의 혼자서 반평생을 살아 왔다.
남편과 일찍이 사별하였기에 아들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오기는 왔지마는 이 땅은 언제고 외롭고 어설픈 땅이었다. 시대가 하두 빠르고 복잡하게 바뀌어 가고, 넓고 넓은 이 북미의 대륙인지라 부모와 자식이드라도 서로가 멀리 떨어저서 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나기 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 되였다.
그래서 늙은 어머니는 먼 곳에서 저희들끼리 잘 살고 있는 아들네 식구들을 생각하고 손자 손녀들을 그리워 하다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이 편지를 써 놓고 80의 노모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옆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이웃 사람이 신고를 하였다.경찰이 와서 문을 열어 이씨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울다가 정말로 외로운 독방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 온 아들의 손에 쥐어진 이 편지를 한 번 읽어 보시라. 이는 우리 이민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말해 주는 현실적인 비극의 이야기가 아닌가?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와 너의 식구들이 하두 보고 싶고 그리워서 이 편지를 쓴다. 너에게 보내지지는 않겠지만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위로를 받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혼자서 편지를 쓰곤 하였다.
나는 너를 잉태하여 뱃속에 넣고 280일 애지중지 조심을 하면서 건강한 너를 낳았고, 서너 독이 넘는 젖을 가슴에 안고 먹여 키웠으며, 없는 살림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너를 대학까지 보내 훌륭한 사회인이 되도록 안간 힘을 다 하였다. 내 딴에는 여늬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내 할 바를 다 한 셈이다.
이제 나는 죽는다 하여도 너에게 서운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너희 식구들을 곁에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이 한이 되여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네가 옆에 있다면 이 어미의 푸념을 편지로 쓸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쓸 수 밖에 없지 않느냐? 혹여나 섭섭한 구절이 있다 하여도 오해는 말고 읽어 주기 바란다.
너도 네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사는 가장이니 나나 세상 떠난 너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허나 너의 아내와 이 시어미와의 관계가 조금 소원한 거리가 있음을 너도 감지하고 있기에, 중간에 쌘드위치처럼 끼어서 버릴 수 없는 이 에미와 사랑하는 네 아내의 사이를 조정하느라,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안다.
그 점을 이 에미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너도 네 장모를 위해서는 이 에미에게 보다 좀 더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늘 너에게 이야기 하였지 않느냐? 그래야 네가 너의 아내로 부터 인정을 받고 자식들을 키우는 데에 마찰이 없을 것이라고 수차 이야기 한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그런 점은 네가 잘 하고 있는 것 같으니 한 편은 안심이 된다마는, 하루 하루 살아 가는 내 머리 속에 너희들의 얼굴이 떠나지를 아니 하고, 손자 손녀들을 내가 업어 키우던 생각, 그리고 이제 징손자들도 생겼으니 그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예쁜 짓을 하고 있는지 너무 너무 보고 싶구나. 언젠가 보내 준 그 어린 것들의 사진을 들여다 보고 또 보고 ….. 왜 그 어린 것들이 그리 보고 싶은지 나도 모른다. 천륜은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내가 60여년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영어 선생님이 Empty-nest-syndrome이란 말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단어가 바로 나의 운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뜻은 문자 그대로 “빈 둥지의 증후군”이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풀이를 한다면 산속에서 사는 비둘기가 작은 둥지 속에 귀여운 쌔끼들를 까 놓고 매일 같이 잠이 깨면 사방으로 돌아 다니며 먹이거리를 구하여 새끼들에게 지극정성으로 모성애를 발휘하고 있었단다.
어느날, 새끼들이 조금 커 지니 날개를 푸득 거리며 날기를 연습하고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슬부슬 이슬비가 오기를 시작하는 어느날, 먹이를 구하여 둥지로 돌아와 보니 모든 새끼들이 다 날아 가 버리고 빈 둥지만 휑하니 남어 있더라는 것이다.
너무 허전하고 걱정이 되는 어미 비둘기는 입에 먹이를 문 채로 먼 저 쪽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는 이야기이다. 어미가 되어 보지 못한 네가 어찌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가마는 지금 내 마음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너에게 이야기 하는 것 뿐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세상에 어느 부모와 어느 자식의 사이에 사랑이 없고 그리움이 없을 수가 있단 말이냐? 자고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지는 못한다는 말씀일 것이다.
비둘기의 새끼들이 날아 가듯이 너는 내 곁을 날아 갔고, 네가 지금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네 아들 손자들도 언젠가는 너의 곁을 날아 갈 것이다. 그 때에는 아마도 지금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빈 둥지의 허전한 증후군을 너의 식구들이 또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옆집에 다섯살 세살짜리 애기들이 살고 있다. 나는 그 애기들을 볼적 마다, 나의 쿡키를 받아 손에 쥐는 모습을 볼 적마다, 나의 증손자와 증손녀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리워 한다. 옆집의 그 애기들 마저 없다면 나는 너무도 외로울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그 애기들을 통하여 내 증손자 손녀들에 대한 그리움을 대체할 수가 있게 하셨으니 그저 감사하세 생각할 따름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희들 모든 식구들이 다 건강하고 별 일은 없는 것이지? 따듯한 정을 붙힐 사이도 없이 내 곁을 떠나간 손자 손녀들이지만 전화를 걸어,에미가 곁에서 시키는 대로 “할무니 안녕하세요”를 전해 줄 때에, 말하기 힘든 한국어로 억지로 의사를 통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가 제일로 행복하였었다.
이제는 그것들도 다 머리가 커 독립을 하였으니 전화도 아주 뜸 하구나. 날이 갈수록 멀어저 가는 그리움속에서 나의 인생이 희미해 지니 너희들을 보고 싶은 이 그리운 마음 이상 무슨 희망이 내게 있을 것이냐?
거리가 멀드라도 바쁜 일이 많이 있드라도 잠시 다녀 갈 수는 없는 것이냐? 내가 지금 이렇게 다리가 편치 못해서 걸음 걷기가 불편한 지가 석달이 되였다. 마음 같애서는 당장 너희들의 곁을 찾아 가고 싶다마는 이제 몸이 쇠약해 지니 겁이 나는구나. 언제고 네가 내 곁에 오는 날 그동안 내가 써 두었던 몇 통의 편지를 전해 주고 싶다. 이제 너도 늙어 가니 몸조심하여라.
2013년 7월 20일
아들 손자 손녀들이 보고 싶은 에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