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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계절
namsukpark

  

 오늘따라 공원 산책길을 따라 흐르는 Humber 강가에서 오리들과 요란한 아침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발걸음을 재촉해갔다. 꿈결에도 고향을 잊지 않는 연어(Salmon)의 귀소(歸巢) 본능은 익히 얻어들었지만 눈여겨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 힘을 기울여 뛰어오르지 못할 리 없건만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모습을 보기위해 그곳에는 벌써부터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머나먼 바다에서 강물이나 하천에 도착하면 빠른 유속(流速)의 하천을 거슬러 올라야만 하고 때론 높은 보(洑)를 뛰어 넘어야 하는 힘겨운 긴 여행길이다. 무사히 목적지에 안착하길 맘속으로 빌었다. 


 음력으로 8월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한가위다.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라’는 맘가짐은 오직 감사할 일뿐이지만, 농부들의 기울인 수고와 노력은 자아(自我) 완성에 큰 몫을 부여하고도 남을만하다. 고향산천을 찾아 발길 옮기는 민족대이동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양인들의 관점으론 불가사의한 일의 하나이다. 


 조상님의 산소에 성묘(省墓)하고 벌초하는 배달민족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은 숭고한 정신의 발로이다. 가족과 고향을 찾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산가족들이 갖는 슬픔은 단장(斷腸)의 아픔보다 더 할 것이다.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은 한 해의 풍성한 수확과 신(神)의 은총(恩寵)에 감사드리는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은 11월의 4번째 목요일인 미국과는 달리 10월의 2번째 월요일이다. 땀 흘려가며 애써 가꾼 농부들의 일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그지없긴 동서양을 막론(莫論)한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칠면조고기보단 즐겨먹었던 토란국에 두텁떡과 모시송편, 콩고물을 흠뻑 뒤집어쓴 쑥인절미의 쫄깃함이 당기는 걸 보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먹고 자랐던 익숙한 맛을 아직도 잊질 못한다. 


 중국인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고(以食爲天), 정치 또한 먹는 것을 가장 우선시(食爲政首)한다. 정치가 국민들의 밥 먹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 못하면 황제는커녕 나라도 뒤엎어지고 말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법도 하다”고 했다. 헐벗은 유랑민(流浪民) 무리가 강해지면 부자를 털고, 관가(官家)를 털고, 나라를 무너뜨린 것이 중국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중국에서의 사상(思想)은 피보다 더 진하다고 한다. 


 자기 마음을 잘 이해하는 친구와의 사귐을 ‘지음지교(知音之交)’라 이른다. 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헤아려줄 수 있는 벗과의 교류는 서로의 삶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든든할 것이다. 세상을 사노라면 나 혼자만 모르고 있던 일이 적잖음을 느낄 때가 있고 하늘을 솟아오르는 지혜를 지녔어도 맘먹은 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분들도 알게 모르게 참 많다. 


 예부터 근심걱정이 있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끙끙 앓음을 에둘러 “관가(官家)의 돼지 배 앓는 격이다.”는 말이 있었을까마는… 계절의 변화에 수긍해가는 것은 자연뿐만이 아니다. 과거는 해석하기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미래는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바뀐다. 현재는 지금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세상의 반대의견에 귀 기울이지 아니하고 구렁이 제 몸 추겨 세우듯 유아독존(唯我獨尊)을 외침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나 다름 아니다. 


 “생활은 가진 것으로 꾸려가지만, 삶은 베푸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어록(語錄)이다. 너나없이 하늘의 특별한 뜻이 있어 특별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이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기쁘고 행복한 나날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순국(殉國)하신 선열(先烈)들의 위훈(偉勳)을 기리며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할 일이다. 어제보다 더 건강한 몸, 더 건강한 마음으로 더 좋은 꿈을 만들어 내고 이루어 내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 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습다./ 저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 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웅크리다가/ 눈꽃 얼음꽃이 제 꽃인 줄 알고/ 제 꽃의 향기와 색깔을 잊는 일 없도록/ 나무들의 장속에 때맞춰 새소리를 섞어주는 일,/ 얼어붙은 것들의 이마를 한번씩/ 콕콕 부리로 건드려주는 일,/ 고드름 맺힌 나무들의 손목을 한 번씩 잡아주는 일,/ 그래서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천지의 나뭇가지가 대들보며 서까래다/ 그러니 어디에 상량문을 쓰고/ 어디에 문패를 걸겠는가!/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 새들은 서로의 소리가 제 둥지다./ 저 소리의 둥지가 따뜻하다/ 이 아침 감나무에 물까치 떼 왔다갔을 뿐인데/ 귀 언저리에 난로 지핀 듯 화안하다.” [복효근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대한민국 ROTC 회원지 Leaders’ World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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