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sungmo
서울장신대 전 총장/서울 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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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운다
munsungmo

 
흙이 운다

 

 


갈대밭에 가서
오랜만에 흙을 본다
흙은 왜 흙처럼 생겼을까?

 

흙을 만져본다
흙 색깔의 분말이 손에 묻는다
황토색이 아니다
까만색도 아니다
이 색이 무슨 색일까?

 

국민학교 시절
미술성적은 항상 '미'였다
그래서 나는 흙 색깔을 모른다

 

'흙'을 종이에 얹어놓고
그 이름을 써본다
'흙'이라고 써야할 것을 그만 '흑'이라고 쓰고 말았다
국어성적은 항상 '수'였는데 이상하다

 

다시 
'흙'이라는 글씨를 크게 쓴다
흙 흙 흙
써 놓고 보니
참 이상하게 생겼다
'흐'와 'ㄹ'과 'ㄱ'의 합성이 영 어색하다
왜 흙은 '흙' 이라고만 써야하나?

 

'흐' 라는 놈이
생겨먹은 게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아니 복면을 쓰고 나를 덮치려는 강도 같다
아님 야생 살쾡이의 독 오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린왕자가 보았던
보아뱀 소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쓴
'흑'이라는 글씨를 본다

 

흑, 흑, 흑
소리를 내어보니
어느새 내가 울고 있다
내 눈물을 받아
'흑'도 울고 있다

 

그래
너의 이름은 의미도 없는 '흙'이 아니라
울어야 할 너의 운명에 맞는 '흑'이다

 

흑, 흑, 흑
소리를 내어보니
어느새 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이 느껴진다
'흑'은
중한 암환자처럼 고통으로
흑흑거리며 내 앞에서 신음하고 있다

 

흑, 흑, 흑
너의 소리는
나를 원망하는 소리로구나
인간을 탓하는 땅의 소리로구나

 

흑이 운다
흑이 아프다

 

흑의 색깔을 알아냈다
생명이 다해가는 중환자의 색깔이다

 

-암사동 한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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