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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29)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갑자기 뜻밖의 달콤한 제안에 나는 놀랬지만 한번 크게 사기를 당한 터라 의심부터 들기 시작했다. 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한테 친절하게 구는 거지?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사기를 칠 돈도 없으니 잃어야 본전 아닌가? 여관에서 잘 수도 있지만 어린 아이를 데리고 언제까지 차가운 여관 방바닥에서 잘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망설였다.

그 여자는 자기는 친정엄마와 같이 살고 남편은 군인인데 부대가 먼 곳에 가 있어 엄마와 함께 산다며 옆에서 내가 과일 파는 것을 보고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집을 떠난지 꽤 되어 집 온돌이 그리웠고 따뜻한 국이라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의 집에 가면 따뜻한 온돌바닥에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지역 사람 한명 알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일단 오늘 밤에 그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낮에 과일을 다 팔고 난 우리는 밤에 기차가 정전으로 인해 몇 시간씩 기차역에 머물러 있는 동안 바께쓰에 물을 담아서 팔기 시작했다. 기차 손님들은 여름에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땀을 많이 흘리고 있던 터라 물을 많이 사 마셨다. 그들은 기차가 비록 멈췄어도 열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앉게 되어 자리를 지키려 일어나지 않는다.

 발 디딜 틈도 없는 열차에 전 재산이 걸려있는 짐들을 두고 내릴 수도, 가지고 내릴 수도 없기 때문에 목마름에 지친 사람들은 1원에 한 컵씩 너도나도 사 마셨다. 물 바께쓰가 금방 동이 나면 얼른 집에 달려들어와 물을 채워 다시 달려 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3시간 정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물을 팔았다. 등에 아기를 업은 채로 말이다. 아기는 기저귀 갈아줄 시간도 없어 집에 들어와 보니 짜면 물이 떨어질 정도로 푹 젖어 있었다. 그렇게 벌은 돈을 우리는 나눠 가지고 나서 다음날 과일을 도매해서 장사를 함께 하기로 하고 새벽 2시가 다 되어 우리는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나는 잠든 지 30분도 안되어 잠에서 깼다. 온몸이 갑자기 너무 가려워서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따라 밤에 정전이 되지 않았는데 불빛에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빈대는 나와 아기 몸에 붙어 사정없이 피를 빨아먹었다. 특히 젖비린내를 맡은 빈대들은 아기 몸을 여기저기 물어뜯었다. 아기도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없어 계속 깨고 울고 보챘는데 온몸 여기저기에 빈대들이 물어서 빨간 반점들이 수없이 돋아나 있었다.

 나도 미친듯이 가렵고 괴로운데 말 못하는 아이는 얼마나 가려울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빈대들은 사정없이 우리 모자를 공격하는데도 그집 식 구들은 습관이 되어서 인지 쿨쿨 자기만 했다. 그 집 앞에는 자그마한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도 잠을 잘 수 있는 가설침대가 하나 있었다. 그 집 할머니 말이 자다가 만약 더우면 창고에서 자도 된다고 했다.

 나는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이다가 가려운 고통 때문에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창고로 잠자리를 옮겼다. 혹시나 거기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곳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게다가 새벽이라 쌀쌀 하기까지 했다. 30분도 못 견디고 다시 집안에 들어간 나는 온 밤을 새운터라 자리에 눕자마자 빈대고 뭐고 느낄 틈도 없이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런데 잠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 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깨웠다. 밤새 누군가가 밥솥을 훔쳐 갔다는데 혹시 인기척을 들은 적이 있냐는 것이다. 정말 알루미늄으로 된 밥솥이 사라지고 시커먼 부뚜막만 보였다. 집집마다 알루미늄 솥을 도적 맞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동 다음으로 알루미늄이 중국에 팔아먹기에 꽤 돈이 되는 물건이고 쉽게 훔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집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부엌과 방이 하나로 오픈 되어 있어 밥솥이 없어졌는지를 한눈에 바로 알 수가 있다. 나는 새벽 5시에 창고에 나갔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밥솥을 분명히 보았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집주인 할머니와 딸은 무조건 나를 의심하였다. 창고로 들락거리면서 솥을 훔쳐 갔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오히려 주인 여자와 할머니가 서로 짜고 나한테 덤터기 씌우는 게 아닌가를 의심했다. 내가 잠이 든 지30분 만에 밥솥이 사라지고 아무도 소리를 못 들었다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어쩐지 어제 하루 이상하게 일이 잘된다 싶더니 갑자기 이건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는 만약에 내가 솥을 훔쳤으면 그대로 도망가지 왜 다시 집안에 들어왔겠냐고 내가 훔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모든 상황이 내가 의심받기에 너무 충분했고 나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젯밤까지만 해도 친절하기 그지없었던 주인들은 갑자기 온갖 욕설로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사기꾼이고 도적년이었고 순진하고 불쌍한 척 거짓말로 자기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주인 여자는 당장 동네에서 한 주먹 한다고 소문난 친오빠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방구석에 몰아넣고 때리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왜 밤중에 뜬금없이 창고에 나갔다 왔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몰래 짜고 솥을 훔쳐가게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 아니냐? 솔직히 말하면 용서를 해준다고 말이다.

 그 오빠라는 사람은 구부린 가운데 손가락 관절 마디로 내 이마를 한곳을 명중하고 계속 때렸다. 내 이마는 벌써 시퍼렇게 부어올랐고 고통은 참을 수 없는데 그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대라! 훔쳐서 어디다 숨겼느냐? 누구와 짜고 했느냐? 원래 어제저녁에 들어올 때부터 뭘 훔쳐 내갈 생각을 하고 온 거지? 이제라도 솔직하게 대면 용서해 줄게” “내가 훔치지 않았어요. 난 빈대한테 너무 물려 잠들 수가 없어 창고에서 자려고 나갔다 들어온 것밖에 아무것도 몰라요. 내가 훔쳤으면 바로 도망가버리지 왜 다시 들어 왔겠어요?”

 나는 매를 맞는 것이 너무도 아팠고 또 사기를 당한 것도 억울했으며 나를 갑자기 여기로 데려와 친절하게 굴던 주인들의 검은 속심에 내가 또다시 속은 것이라고 분통해 했다. 매는 점점 심해지고 눈에서 불이 번쩍번쩍 일면서 뼛속까지 느껴지는 고통에 도저히 정신 차릴 수가 없는데도 절대 내 말을 믿지 않는 그들에게 나는 그만 악에 치받쳤다.

 쥐도 궁지에 다다르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 내가 훔쳤다. 왜? 날 차라리 죽여라. 너희들 그러려고 나를 데려 왔니? 내가 솥을 훔쳤으니 이젠 파출소에 데려가든 날 여기서 죽이든 마음대로 해.” “아니 이 쌍 도적년이 어디서 악다구야? 훔친 건 어디에 누구한테 팔았어?”

 “모른다. 난 모른다구” “왜 몰라? 니가 훔치고도 왜 몰라? 얼마 받고 팔았어?” “내가 훔쳤지만 난 모른다. 왜? 내가 훔치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거다. 네놈들이 나를 훔쳤다고 몰아가고 있잖아. 내가 안 훔쳤다는 데도 내 말을 안 믿잖아. 날 차라리 죽여라 죽여. 그리고 내 아들도 같이 죽게 해줘. 이렇게 살아서 뭐해? 빨리 죽이던 살리던 니네들 마음대로 해라.”

 드디어 분노가 폭발해버린 나는 눈물범벅이 되어 그들을 향해 울부짖었고 절규하였다. 그토록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나를 밟고 또 밟으며 가마솥 훔친 도적으로까지 몰리고 있는 내 인생에 대한 원망과 좌절감에 나는 이성을 잃어 버렸다. 또한 끝 없는 원망이 가슴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만하자. 그만 살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훔쳤다고 하던 아니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 세상을 더 이상 살기 싫다.

 내가 부모들 남겨두고 집을 떠나온 그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고 있었다. 그냥 죽고 싶다, 아들과 함께. 나는 집을 떠날 때 만약에 나에게 최악의 굶주림 상황이 찾아온다면 더 살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죽을 결심을 하고 챙겨 왔던 쥐약을 꺼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느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세상을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한 것 아니겠는가?

“나를 지금 죽이지 않으면 난 쥐약을 먹고 여기서 죽어 버릴 거다.” “아니 이게 어디서 배짱이야?” 그 집 할머니는 얼른 쥐약을 빼앗아 하수도에 쏟아버렸다. “20대 새파란 나이에 아기 생각하고 꿋꿋이 살 궁리를 해야지 죽을 생각부터 하면 되겠니?” 그리고는 아무래도 내가 한 짓이 아닌 것 같다고 옹호하였지만 아들과 딸은 엄마가 내 편을 들어준다고 윽박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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