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sunggi
미시사가 거주
TD Bank 전산직 근무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24 전체: 72,162 )
진로는 불평등하다(하)
leesunggi

(지난 호에 이어)

마땅히 들어갈 직장도 없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접었다. 인문계열 전공이었다. 그러던 차에 생계비 마련을 위해서 애들을 가르쳤고, 제법 소문이 나서 임대료 내고 학원도 차릴 수 있었다.

안정이 되었다 싶었는데, 쓰라린 위장병이 발생했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그간 모은 돈을 병원수술비로 사용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학원을 처분하고 퇴원 후에 무리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야 했다.

앞으로 무얼 하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해보았다. 지원할 직장이라고는 동종업계 학원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리가 별로 없었다. 새로운 이공계열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대학을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궁리해보아도 원래 하던 학원을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학원이 잘 운영돼서 최소한 마흔 중반까지는 굴러가야 저축한 돈으로 노후를 보낼 것이다. 학원이 잘 안되면 일반회사에 들어갈 길도 망막하고, 경쟁이 심한 공무원시험을 다시 보는 것도, 공무원으로 사는 것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민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집에서 독립한 이 청년은 남은 인생 어떤 선택을 해야 평생의식주가 안정될까? 만일 그가 학원을 접고, 트럭운전을 한다든지, 식당에서 일한다든지, 친구랑 사업을 한다든지 하면, 시작은 할 수 있어도 잘 될지 의문스럽다.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선택의 폭이 좁다. 만일 그의 집안이 부유했다면, 사업에 실패해도 재기할 목돈이 있을 것이고, 첫 사업실패를 거울 삼아서 두 번째는 좀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의 전공이 회사를 그만둬도 갈 데가 많은 의료전문인, 법관, 전산개발자라면 자격증과 경력만으로 갈 수 있는 직장이 많다. 자영업을 해도 된다. 그 나머지 직업들 중에서 나이 먹어서도 일할 수 있고, 회사에 상관없이 기술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면, 대학 졸업한 청년이 10년, 20년을 바라보면서 의식주의 안정을 이룩할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고 취업 잘되는 전공을 선택한 경우나 부자아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그러니 대학재학 중에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을 패스하고 행정부나 법원에 일을 시작한 인생들이 보통서민들의 인생을 제대로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업을 하다가 접기를 반복한 내 친구의 말년을 보면서, 25년이라는 세월이 장면 바뀌듯이 훌쩍 다가온다. 최근에 상담한 29세 청년에게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지 못하면, 그래서 하던 사업을 접고 다른 사업을 알아보기 시작한다면, 별다른 전문성도 없고 부모로부터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

아마 그 청년이 캐나다서 산다면, 자기 혼자 먹고 사는 일은 단순노동을 해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병원 입원하면서 그간 저축한 돈을 모두 날려 버릴 일도 없을 것이고, 저임금을 받아도 정부보조 아파트에서 살 수는 있을 테니…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바닥을 구성하는 것이므로, 아직 국가에서 살뜰하게 보살펴주지 못하는 조건이라면, 어디서 어떻게 자기만의 생태계를 구축할지 냉철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부자아빠를 둔 사람이 아니라면, 평생 안정적인 소득을 마련해줄 직업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나에게 사업이란, 여전히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걱정부터 생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