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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이념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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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중반의 삼촌과 정치 이슈에 대하여 말이 안 통하는 이유는 검찰과 정권 갈등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다. 하늘이 흐린 것을 보니 오후에는 비가 올 것 같다. 아니다, 비가 올 정도는 아니다, 라고 논쟁할 때 두 사람은 같은 세계관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검찰개혁을 놓고 좌우의 대립으로 바라보는 삼촌은 빨갱이들이 여의도 광장에서 파쇼정치를 한다고 비판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지지세력은 통째로 친북 파쇼세력으로 묶어 버린다. 이념대결로 바라보면 항상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주요한 사안으로 인식된다. 이것이 전형적인 프레임적 사고방식이다. 


좌우 이념이란 원인이 아니라 현상을 놓고 관념적으로 정의한 틀에 불과하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초과근무를 시키고 근무수당 지급을 거부할 때 그것에 대항하여 파업을 일으키는 직원들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바라보면서 빨갱이 세력들에 선동이 되어 분규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평해버리면 초과수당을 지급하라는 주장의 정당성은 좌우이념 프레임에 묻혀 버린다. 


공정함과 정의는 각자가 가져가야 할 몫을 제대로 분배해달라는데 있다. 남녀가 데이트할 때 항상 남자가 비용을 지불하다가 여자에게 이번에는 네가 지불하라고 해서 다툼이 벌어지면 우리는 이것을 좌우갈등이라고 하나? 프레임의 한심한 점은 사안 그 자체의 미시성을 프레임이라는 거시성으로 단순하게 환원시켜버리는 데 있다. 


공정한 수사와 기소권 행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마약을 한 사람보다 표창장 받은 사람을 먼저 수사하고 기소한다면, 여야 정치인에 대한 수사에 차별을 둔다면,  이것은 공정성의 문제이지 좌우 이념 대립이 아니다. 


박정희 집권 시절, 유신개헌에 반대하는 시민과 학생들에게 좌파세력으로 규정하고 잡아가둘 때 손쉽게 반대의견을 짓누르는 수단이 이념갈등이었다. 정치문제는 정치라는 이념세계 속에서 게임이 아니다. 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하는 구체적인 갈등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과정이지 이념이라는 세계관을 뿌리채 들어내서 개조하는 과정이 아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고장이 나면 정비소에 가서 수리를 맡긴다. 다시 차는 굴러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시스템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통령이 비선조직으로 변칙적으로 나라를 운영하면 이 고장을 수리해서 정상화 시켜야 한다. 


검찰이 법무장관 가족을 부당하게 수사해서 사퇴하게 만들면 기소 수사권 남용이라는 고장을 수리해야 한다. 올바른 정치란 UFC격투기 경기가 아니다. 상대를 쓰러트려야 내가 승리하는 게임에서는 항상 내 몫을 더 챙기는 것만이 목표가 된다. 좌우이념 대립으로 정세를 바라보면 누가 승리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지 고장수리를 간과하게 된다. 


여의도에서 촛불시민이 외치는 것은 사회주의로 체제를 바꾸자는 외침이 아니다. 삼권분립과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농락하는 과도한 검찰권력이라는 비정상 상태를 수리하자는 요구이다. 한 집단에 과도한 권력이 주어지면 "목사님, 이 헌금은 목사님 마음대로 사용하세요. 우리는 목사님을 믿으며 감찰하지 않겠습니다."가 되어버린다. 


공부 잘해서 사법고시 합격한 엘리트 집단이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국가를 통제할 권력을 우월하게 부여하자는 것은 좌파이념인가 우파이념인가? 이념이라는 잣대는 현상의 구체적인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하는데 헛발질을 가져온다. 


이념은 구체적인 사안들에서 공통점을 추려서 세상을 바꾸거나 지키려는 사람들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수단적 개념이다. 플라톤이 보는 순수한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는 불변의 대상이 아니다.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는 관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실질적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다같이 공정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빚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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