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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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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내가 사는 미시사가에서 도인을 만났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짖고 하얀 도복을 입고 요가를 배우러 온 회원들을 향해서 잔잔하게 말을 하곤 했다. 나보다 나이가 최소한 열살 이상은 어린 그는 평상시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명상과 수련을 오래하면 저리 되는 것일까?


가수가 무대에서 조명발을 받는 옷을 입고, 인상적인 말을 하는 것이 어울리는 것처럼, 이 도사도 자신이 하는 일과 일치되는 언행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동자는 회원들을 바라보았지만, 실제는 저편 위에서 내려보는 것 같았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초월성이 섬뜩 보였다. 


범접할 수 없는, 함부로 담뱃불 좀 빌립시다, 라고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도사양반을 떠올릴 때 마다 싱거운 기분이 든다. 도사가 어디 있나, 그냥 폼 잡은 거에 불과하지. 그런 분위기에 압도돼서 점잖게 앉아서 경청하던 내가 순진한 거지.  


7년 전에 동업자를 만났다. 그는 비즈니스 세계에 입문한 나를 이모저모로 가르쳐주었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어이 비즈니스는 처음이지?' 하는 태도로 밥을 사주고, 방향을 제시하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내 옆에 있었지만, 나보다 한 단 위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 보는 듯 대했다. 내 딴에는 속 감정을 모두 드러내면서 씩씩거리고 말을 하면, 그는 한 발 물러서서 모든 것을 예측한 사람처럼, 자기 속 생각을 가리고 말을 해주었다. 


시간이 흘러서 그와 더 이상 안 만나게 되었다. 비즈니스에서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고, 마음에 들던 않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뜸해진 나에게 문득 안부전화를 해왔다. 사람의 만남이 이익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입장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장기적 관점에서 어느 누구나 필요하고, 따라서 관계유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사람에게 진심이 통하지 않고, 이익배분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관계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 동업은 할게 아니지. 동업자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광경은 그의 동공이었다. 그 눈은 나를 바라보지만, 영혼은 그 보다 1미터 떨어져서 나를 내려다 보는 느낌을 주었다. 동업자는 상수였고, 나는 그의 눈에 하수였다. 

 

미디어에 나오는 안철수의 눈을 본다. 그의 눈은 정면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다. 모인 사람들로부터 그는 초월해 있다. 답답함, 원칙, 차별성을 보인다. 물리적인 거리와 달리 동공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지리(geography)를 드러낸다.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동창을 오랜만에 세종문화회관 뒤편 분수대에서 만났을 때 눈이 풀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악수를 하면서 상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훌륭한 정치인의 태도이다. 눈동자, 동공의 움직임, 깊이는 그 사람의 본심을 보여준다. 


살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은 더 높은 사람도, 더 많이 깨달은 사람도 없다는 것, 조금 더 아는 것, 조금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은 아주 미세한 기능적이고 인위적인 차이에 불과하다. 


거만한 사람, 자기 고통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상대와 눈동자를 오래 맞추는 것을 못한다.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은 목욕탕에서 옷을 벗고 서로 바라보는 것만큼 징그럽고 창피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별이 있고, 차원이 다르다고 믿는 사람들은 상대방과 오래도록 눈을 마주대하지 못한다. 


눈을 오래 마주할 수 없는 사람과는 속 깊은 대화를 가질 수 없고, 서로 신뢰할 수 없다. 누구를 보더라도 그 사람의 동공 속에 머무는 영혼을 바라볼 수 있어야 상대방을 공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간 허접한 사람들을 크게 보고 괜스레 머리 숙였던 내 과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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