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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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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덮인 앞뜰(2018년 4월 15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토론토 사람들이 가장 애송(愛誦)하는 ‘애송시(愛誦詩)’의 한 구절이다.
큰 소리로 낭송하는 사람도 있고 속을 삭이며 암송하는 사람도 많을 게다. 특히 4월에는 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이다. 약 2천년 전 전한(前漢)의 왕은 북방 흉노족의 왕에게 왕소군이라는 궁녀를 바친다. 침략을 하지 말아달라는 뇌물로서다. 그녀는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4대 미인 중의 하나다.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 삭막한 땅. 그 왕소군의 심사를 당나라의 시인 동방규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탄식했다.


 
 입원해서 5주간의 항암 치료를 받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부터 눈보라가 기습했다. 강풍에 나무들이 쓰러지고 하이웨이에선 트랙터 트레일러가 미끄러져 도랑에 처박힌다. 밖을 내다 보니 항암치료를 받아 머리털이 빠진 것처럼 그간 솟았던 튤립이며 수선화의 순들이 보이지 않는다. 눈과 얼음비에  묻혀 화단 전체가 탈모상태로 번들거리고 있다.

 노크 소리가 났다. 순간  문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마침 아내는 어디 가고  머리털이 많이 증발한 모습으로 누굴 대면하기가 쑥스럽다. 하지만 나이 탓에 이미 타인의 얼굴로 풍화된  지도 오래지 않은가. 병색의 얼굴인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문을 열었더니 옆 집 마리아다. 꽃다발과 선물을 내민다.

 “생큐 소 머치, 마리아. 하지만 면역력이 약화돼 꽃은 받을 수 없군요.”

나의 경우 균들이나 박테리아의 감염이 제일 무섭다. 그래서 집에 있는 화초들도 다 내 보내야 한다.
 감염을 무서워하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병실을 매일 같이 소독약으로 청소를 한다.
그 청소부가 변소는 물론 사람 손이 닿는 문의 손잡이며 매일 소독을 하는 것을 보고 그의 임무가 간호사 못지  않게 프로페셔널하게 인식됐다.
 고마움에 나오면서 조그만 선물을 주고 “씨 유 어게인(다시 만나요)” 인사를 했다.
헌데 마르코스(청소부)가 큰 소리로 손사래를 치는 게 아닌가.
 “미스터 리. 여긴 다시 오면 안 돼요.” 환자로 또 오지 말라는 얘기다.


 이웃 동네에 사는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내 마음을 얼마나 괴롭게 할까? 하지만 석천을 본 순간 얼마나 나는 안도의 감을 느꼈는지!”
 ‘내 마음을 얼마나 괴롭게 할까?’는 문장은 글을 만지작거리는 나도 미치지 못하는 진정성의 한 꼭지점이다.

 바깥 햇볕이 좋은 날은 매일 점심을 가져오는 아내에게 튤립과 수선화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묻곤 했다. 겨우 손가락 크기인데 4월 들어 벌써 보름이 가까운데도 밖은 한파의 연속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 연거푸 토론토는 눈보라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전기가 나가고 꼭 필요하지 않는 한 밖에 나오지 말라는 당국자의 경고도 스타지에 기사화 됐다.
 아무래도 수정해야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토론토 사람들이 가장 애송(愛誦)하는 ‘애송시(愛誦詩)’가 아니라 가장 애통(哀痛)하는 ‘애통시(哀痛詩)’가 아니겠냐고.
 빙판으로 변한 화단 위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수북하다. 마리아와 마르코스와 이웃동네의 오랜 친구, 그리고 기도를 멈추지 않겠다는 많은 지인들의 얼굴들이 빙판 위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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