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57 전체: 59,415 )
그늘의 크기
leesangmook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 있는 조슈아트리들과 그 아래 있는 텀블위드들

 

 

 

떠벌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는 개근상만 받아도 우쭐했다. 하지만 다 늙은 나이에 생뚱맞은 문학상을 받는 건 면구스럽다. 친한 지인들이 많이 사는 LA.인지라 하나의 핑계거리가 돼주었다. 시상식이 끝나자 지인들은 Death Valley(데스 밸리)국립공원과 Joshua Tree(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 데리고 갔다.


둘 다 사막이다. 광대한 사막은 텀블위드(Tumbleweed. 구르는 잡초라고도 함)로 덮여 있다. 물론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는 조슈아트리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생태계다. 여기처럼 잡초나 나무들이 어깨를 맞대는 밀집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조슈아트리들이 울창하게 우거졌다거나 텀블위드들이 촘촘하게 자라고 있지를 않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서로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고원기념사업회로부터 제7회 고원문학상을 받게 됐다. 기념사업회 회장은 같은 고등학교 동기생. 졸업 60여 년 만에 한 사람은 상을 주는 갑이 됐고, 한 사람은 상을 받는 을이 됐다. 수상소감은 자연스레 고등학교 시절을 들먹였다. 어느 선생하면 지금은 겨우 그 분의 별명이나 아니면 수업시간에 들었던 한 두 마디의 어록만 남아 있지 않은가.


“상업이란 인적, 장소적, 시간적 관계를 맺어주는 일이다.”라는 말은 상업선생이 남긴 어록. “문학도 인적, 장소적, 시간적 관계를 맺어준다는 점에서 상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빗대서 수상소감을 말했다.


LA의 문인들과 만날 수도 있는 인연도 그리고 19세기의 ‘레미제라블’이 불란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읽히며 또 21세기로 넘어와 뮤지컬이 되는 게 문학의 기능이 아니냐고 했다. 


순서에 없었는데 지인의 부인이 나와 축가를 불러줬다. 노래의 제목은 ‘인생의 황혼’. 가사를 옮기면 “젊은 날의 추억은 한갓 헛된 꿈이라/ 윤기 흐르던 머리 이제 자취 없어라/ 오 내 사랑하는 님 내님 그대 사랑 변찮아/ 지난날을 더듬어 은발 내게 남으리”


우린 이민 초기 토론토에 같이 살다가 이제 백발이 돼 이렇게 만난 것이다.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세월이 어디쯤 와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민 초기 토론토에 같이 살다가 LA로 이주한 지인의 부인도 노래를 불러줬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다. 피크닉 테이블에 마주 앉아 싸온 김밥을 다 먹고 난 다음이었다. 제목은 ‘웟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 가사는 “푸른 나무와 붉은 장미를 보아요/ 나와 당신을 위해 꽃을 피우는 것을 보아요/ 그러면 스스로 생각을 하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그렇다. 가사는 ‘나와 당신을 위해 꽃을 피우는 것을 보아요’다. 우리가 일단 그렇게 생각하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텀블위드나 조슈아트리는 서로의 그늘을 피해 떨어져 생존한다. 물이 없는 사막이다 보니 그늘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지인의 부인들이 불러준 노래들은 사람이 만드는 그늘은 서로 손을 잡는 크기라는 것을 가슴에 심어주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