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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강(海岡) 김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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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강 김규진이 그린 총석정(해금강) 절경도의 일부

 

 

“1920년 금강산 가는 길에 총석정에 올라 수석(水石)이 절승함을 보고 당대 최고의 화가 해강 김규진은 그 절승을 창덕궁 희정전에 옮겨 놓았다.” 12월 12일 MBC 뉴스 시간에 나온 아나운서의 멘트다.

 

 

 


해강 김규진이 누구인가. 멘트대로 개화기 최고의 화가가 아닌가. 그 손자가 바로 토론토에 살고 있는 화가 김경식 씨다.
1995년 금강산을 갔을 때 구룡폭포가 흘러내리는 오른쪽 암벽에서 ‘彌勒佛(미륵불)’ 세 글자를 볼 수 있었다. 해강이 써서 암각한 글자다. 그 높이는 자그마치 19 미터. 전봇대 크기의 붓을 휘둘렀다고 한다.


희정전은 대한제국 마지막 왕 순종이 접견실로 사용하던 공간. 그 동쪽 벽에 해강의 ‘총석정 절경도’가 벽화로 붙여있다. 서쪽 벽에는 역시 그의 작품인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가 걸려있다. 두 그림 다 비단에 그린 것을 벽에다 부착한 것이다. 일반에게 98년 만에 공개되면서 뉴스가 된 것이다. 
‘총석정 절경도’는 폭이 약 2m, 길이가 약 9m인 대작. 무엇보다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서 있는 바위들은 얼핏 운동장에 늘어선 초등학교 아이들을 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교장 선생의 시선으로 그린 것 같다. 


더 좋은 비유는 크레인 촬영이다.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영화를 찍으면 피사체는 산이건 바다건 발 아래 놓여진다. 그런 촬영기법을 처음 접한 게 영화 ‘서편제’다. 
소리꾼 유봉이 양딸과 의붓아들을 데리고 시골길에서 진도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그렇다. 밭과 산이 실물대로 확대되면서 배우들은 물론 관객도 절로 풍경의 일부가 되고 만다.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 역시 내려다보는 그림이긴 마찬가지다. 제일 높은 비로봉은 물론 봉우리들을 감도는 구름들도 화가의 발 아래 있다. 이처럼 조감도(鳥瞰圖) 비슷한 기법으로 그려지다 보니 봉우리며 골짜기들이 샅샅이 드러나게 되고 가보지 않은 사람도 접근성이 뛰어나다.


1868년 평안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외숙으로부터 서화를 배웠다. 18세에 중국으로 가 10년 동안 중국의 서화를 연마했다. 귀국 후 영친왕의 서예 지도를 했으며 지금의 비서실장 격인 시종장을 지냈다. 그를 일본에 보내 사진 기술을 배워 오게 한 사람은 고종. 1907년 국내 최초의 사진관을 개업했다. 


한국의 수많은 명승고적과 고루(高樓), 거찰(巨刹)에는 그의 필적이 부지기수다.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는 물론 건봉사, 마곡사, 쌍계사, 전등사 등 절엔 그가 쓴 현판들이 걸려있다.


세월의 부식으로 구룡폭포의 물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온통 산 하나를 화선지로 삼아 휘갈긴 ‘彌勒佛’ 세 글자는 암실의 필름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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