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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혼(金婚)여행
leesangmook

 

옛 사랑의 그림자

 

 

하이파크 공원이던가
지하철이 잠깐 햇빛에 나올 때가
거기 담벽에
“Susan, I love you.”
붉은 글자로 크게 써 놓은 글자들
젊을 때는 누구나
부끄러움도 없이
북받치는 사랑을 외치고 싶어진다
나도
그런 사랑을 적어
알프스의 만년설 위에 남기고 왔다
그리고는 잊었다
지하철에서
또 지하철 속으로
빠르게 지나간 세월
이제
땅 위로 나가야겠는데
바깥의 햇빛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가 다가왔다. 사진을 찍어 주겠단다. 남에게 사진 찍어달라는 건 민폐 아닌가. 헌데 우리를 보자 그가 다가온 것이다. 앳된 청년이다. 


 곱슬머리에 뺨은 복숭아빛이다. “어디서 오신거죠?” 물었더니 이태리에서 왔다고 한다. 신혼여행을 로키로 왔다는 거였다. 로키는 산 하나 하나가 경외의 대상이다. 그 앞에선 말없이 경배를 드리는 게 도리다.


 근데 이 산들 사이로 빠져 나가는 트랜스캐나다 하이웨이는 궁색하다. 길가에 사진 찍을 공간이 거의 없다. 용감히 차를 세울 수밖에 없다. 그 지점에서 바라보는 산의 위용은 장엄이라는 단어 한 마디로는 부족하다. 


 우리 부부는 결혼 50주년을 로키 여행으로 정했다. 캘거리에 비행기로 내려 로키 산맥을 따라 밴쿠버까지 렌터카로 달려보기로 한 것이다. 전에 차로 대륙횡단을 했지만 이 구간을 하지 못해 그 미진함을 메워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우연의 조화인지 그를 만난 것이다. 50년을 산 커플과 50년을 살아야 할 커플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차에 있는 초콜릿을 꺼내 청년에게 선사했다. 청년은 손사래를 치다가 결혼 50주년이라는 말에 기꺼이 접수했다.


 사실 딴 데 눈팔 새가 없는 게 신혼 아닌가. 헌데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 눈을 판 신랑의 오지랖을 신부는 뭐라고 할까. 하지만 모를 일이다. 이 청년이 문득 로키에서 받은 초콜릿을 기억해 낼지… 앞으로 50년 동안 결혼생활이 순조로울 것을 바라는 기원이 그 작은 인사 속에 담겼다는 것을…


 밴프로 다가가자 로키의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10여년 전 이집트의 룩소에 가서 장제전으로 다가갔던 장면이 비교된다. 로키의 산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떤 감탄사도 적절치 않다. 같은 신전이지만 장제전은 인간이 만들었고 로키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사실 신전에서 신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로키의 산들을 보는 순간 신의 손길을 느낀다. 결혼 50주년을 다른 어느 곳에서 보내는 것보다 감사한 것은 그래서다. 새로 출발하는 50년 후의 새내기를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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