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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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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弔詩> 노혜일 님의 영전에

 


 
임종하기 이틀 전
시트 밖에 나와 있는 부은 다리를 보고
아내와 나는 각자 다리 하나 씩을 맡아 주무르기 시작했지요
봄날의 햇병아리처럼 이 세상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다리
어느 날 문득 한 줄기 음악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다리
오선지 위 음표들의 숲을 헤매던 다리
나는 이 다리가 님을 무대 위로 데려가곤 했다고
어떤 조각품도 이만한 예술품은 없다고 힘있게 말했지요


손녀의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같이 걸어야 할 다리
지아비의 손을 잡고 황혼의 언덕길을 같이 내려가야 할 다리
이승에서 님이 걸어야 할 길은 아직 남아 있는데
가을무처럼 무거운 다리를 하고 어느 먼 곳으로 길 떠나셨나요
들꽃처럼 여윈 얼굴을 보고 아내는 복받치는 울음을 애써 참고
생뚱맞게도 나는 하찮은 유머 시리즈를 풀어 놓았지요


들국화 꽃잎처럼 얇은 님의 얼굴 위로 퍼지던 미소
그때 님은 나직이 말했지요 “언니, 사랑해요”라고
높은 절벽에 혼자 외로이 서서 사방은 어둠 뿐이고
어디로 뛰어내려야 할지 알 수 없는 무서움 속에서도
천국에 가면 할 일이 또 있을 거라는 님의 소망


오늘도 해는 떠올라 나뭇잎들 아직 푸르기만 한데 
길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


누구의 잘못으로 떨어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 붉게 물들고
우리들의 삶이 아직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


우리는 님을 기억할 겁니다 사랑한다는 님의 말
사랑하는 자여,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는, 님의 마음을. 

 

 

 “토론토에서 인사를 하면 저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소프라노 노혜일의 남편이라고 하면 아, 그러시냐고 하지요.”


 이렇게 말하는 지인이 추모음악회를 열었다. 2주 전 수요일 저녁, 아내가 소천한 지 10년째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남편은 한 둘이 아닐 게다. 하지만 사람들을 초청해서 10주년 추모음악회를 연다는 건 품격 있는 남편이나 가능한 일이다.


 백 명은 못되는 지인들이 모였다. 음악을 하다 간 사람이니까 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합창도 있었고 바이올린 독주도 있었다. 생전에 고인은 노엘합창단을 창단하고 지휘했다. 그 단원들이 몇 나와서 성가를 불렀다.


 바이올린 연주는 고인이 즐겨 부르던 가곡을 몇 곡 연주했다. 하지만 어정쩡한 순서도 있었다. 어린 손녀와 손자 셋이 나와 혼성합창을 하는데 뜻밖에도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할렐루야’를 부르는 게 아닌가. 레너드 코헨은 퀘벡 출신의 작곡가로 작년 겨울 작고했다. 문제는 그의 ‘할렐루야’가 연약한 어린애들에겐 무겁다는 점이다. 곡은 5학년짜리 소녀와 그 밑의 동생들 성대로는 받치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절규하듯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가사 역시 성인의 근육으로 들어야 할 무게다.


 “당신은 지붕 위에서 목욕하는 그녀를 보았지요/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 달빛은 당신을 타락시켰지요” 여기서 당신은 다윗왕이다. 목욕하는 그녀는 밧세바다. 아동용 콘텐츠가 아니라는 말이다. 더 무거운 가사는 마지막에 나온다. “그리고 모든 것이 틀렸다고 해도/ 그 노래의 주인 앞에 서게 되겠지요/ 내 입에 할렐루야라는 단어만 남긴 채” 


 여기서 ‘노래의 주인’은 하나님이니 어른도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무게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메시지의 전달은 가끔 오류 발생의 소지가 있다. 10년 전 소프라노 노혜일의 장례 예배에서 나는 조시를 읽었다. 


 거기에도 나오지만 소천을 이틀인가 앞둔 마지막 문병에서 나는 엉뚱한 유머를 했다. 그녀의 엔돌핀이 한 방울이라도 솟았으면 바라서였다. 하지만 적절치 않아 후회가 뒤따랐다. 인생에서 피하기 어려운 게 어쩌면 잘못된 메시지의 오류 발생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가 더 생각난다.

 

 

▲추모음악회에서 합창하는 옛 노엘합창단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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