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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다시 생각하며
leesangmook

  

▲독일 통일 후 타임지 표지에 난 콜 수상(1990년)

 


 
 잠재의식들이란 믿을 게 못된다. 독일 통일만 해도 그렇다. 우린 서독이 잘 해서 통일이 된 걸로 안다. 과연 그럴까. 사실인즉슨 그게 아니었다. 동독 사람들 때문이었다. 동독 사람들이 서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물을 떠놓고 빌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독 사람들이 기를 쓰고 서독으로 오려고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수 있었겠는가.


 헌데 한반도는 어떠한가. 갑자기 DMZ가 터졌을 때 북한 사람들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 남한을 좋아해서 물밀 듯 내려올 것인가. 아니면 남쪽 대신 중국으로 밀려들 것인가. 그럴까봐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에 15만 명의 병력을 배치한 건 아닐까.


 지난 16일 독일의 전 수상 헬뭇 콜(Helmut Kohl)이 타계했다. 그는 독일 통일의 주역이라고 불린다. 동독 사람들이 물밀 듯 베를린 장벽을 넘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건 그가 폴란드 수상과 회담하고 있을 때였다. 
 그게 1989년 11월 9일 밤 10시경. 다음날 새벽엔 주민들이 망치, 곡괭이는 물론 중장비를 끌고 와 무단으로 장벽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실례지만, 지금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즉시 독일을 갈라놓았던 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을 향해 “독일인의 생존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이 정도 배짱의 정치인이 한국에 출현할 날은 언제일까. 이어 그는 “통일이라는 열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베를린으로 날아갔다. 몰려드는 동독 주민들을 향해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외쳤다.


 장벽 붕괴 뒤 혼란 속에서도 20일 만에 ‘통일 독일을 위한 10개항’을 발표했다. ‘10개항’엔 동독에 자유•비밀선거를 실시해 민주주의를 세우는 계획도 들어 있었다. 그 뒤 모스크바를 세 차례 찾아가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담판을 벌였다. 소련은 당시 빈털터리였다. 비공개 액수이지만 대충 400억 유로(미화 약 500억 달러)를 받고 동독 주둔 소련군을 철수시켰다.


 한국에 새로 들어선 문재인정권은 남북관계의 복원을 지향한다. 전 정권에서 금지했던 인도적 대북지원은 물론 남북간 민간인 접촉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작년 봄 한국으로 들어온 북한식당 종업원들부터 먼저 돌려보내라고 주장한다. 초장부터 브레이크가 단단히 걸린 셈이다. 벌써 얘기가 오갔던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 개최도 무산됐다. 민간인들이 하겠다는 공동행사를 남한 정부는 허가했는데 북한에서는 거부한 것이다.


 UN제재며 미국과 중국 등 거대 세력들과 대결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어떤 화해 조치도 현재로선 그야말로 쥐꼬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유연했던 시기엔 남북한은 물론 해외동포들도 통일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6.15 남북공동선언기념회 해외지부들도 있었고 쌀보내기며 의약품보내기 등 인도적 지원을 하는 여러 단체들도 있었다. 


 그런 통로들의 재가동을 모색해 볼 수는 없는 일일까. 불씨를 살려내기란 어려워 보이지만 미약하나마 낙숫물 효과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새 정부가 해외동포 단체들을 통한 우회접근을 시도해 봄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좋아하게 하는 실마리라도 찾았으면 하고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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