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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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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꽃 

 

 

 가을이 되면
 낙엽처럼
 사람도
 떠나가지만
 하나님의 시차는
 봄이어서
 유월의 모란꽃
 해마다
 임종의 미소를
 보여주신다.

 


 
 몸이 아픈데도 그녀는 작별을 준비했다. 영정사진이 그걸 말하고 있었다. 장례식은 지난 2월 말. 사진 속에서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자랑스럽게 꽃다발을 두 팔로 안고 자기가 그린 작품 앞에서다. 대개의 영정사진들은 달랑 인물만 나온다. 살아생전 딱히 좋아했던 아이콘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유추할 수가 없다. 하지만 떠나면서도 그녀는 소통의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이승의 흔적 중 어쩌면 그녀는 그림그리기가 맘에 들었을지 모른다. 몸이 아픈데도 서화반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모란을 특히 공들여 그렸고 김영랑의 유명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한 구절도 곁들였다.


 우리 집 화단에도 지금 모란이 절정이다. 그 아름다움의 뿌듯함은 가히 계절의 오르가즘이다. 그래서 영랑도 모란이 지면 내 한 해는 다 가고 만다고 하강 국면을 한탄한 게 아니었을까. 모란은 오해의 여지가 흔한 꽃이다. ‘작약(芍藥)’이라고 해야 하는데 ‘모란’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모란은 나무에서 피는 ‘목단(木丹)’을 가리킨다. 작약은 나무가 아니고 초본(草本)식물이다. 우리 집 화단이나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약은 풀이기 때문에 가을이면 말라버리고 만다. 겨울잠을 잤다가 새봄에 다시 올라온다. 문제는 작약이라고 부르면 한약 이름 같아 딱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함박꽃’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함박’은 ‘함지박’의 준말이니 꽃의 크기에 걸맞은 이름이 아닌가. 하지만 여왕의 얼굴을 능멸하는 이름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함박꽃과 개미와의 관계다. 꽃망울이 맺히기가 무섭게 달려드는 개미들이 첨엔 해충인 줄 알았다. 이 역시 오해다. 개미들이 바글거리는 것은 꽃망울에서 나오는 즙을 먹기 위해서다. 덕분에 단단하게 포개져 있는 겹겹의 꽃잎들이 열리기 시작한다니 이는 상생의 관계가 아닌가. 


 오래 전 일이지만 장례식에서 읽을 조사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고인으로부터였다. 불치병의 통증은 고강도의 진통제도 소용없었다고 한다. 그 고통이 야 상상할 수 없었지만 천국에서 하나님 품 안에 안겼을 때 틀림없이 미소를 지었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큼 고인의 믿음이나 인품이 그러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으니 임종의 순간 미소가 떠오르면서 얼굴이 환해졌다는 것이다. 임종에 옵션이 주어진다면 그 이상의 축복이 어디 있겠나. 그녀의 옵션 역시 그랬기 때문에 모란 앞에서 미소를 짓는 영정사진을 생전에 준비하지 않았을까. 그 미소는 어떤 미소의 크기보다 더 큰 함지박 크기여야 하기 때문에 작약은 굳이 ‘함박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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