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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와 오바마
leesangmook

 

 

 

            
 지난 주 20일(화) 트뤼도와 오바마의 연설이 있었다. UN 총회에서다. UN에서 하는 연설이 트뤼도는 처음이고 오바마에겐 마지막이란다.


 연설 도중 자리를 뜨는 부잡스런 외교관도 보인다. 꼭 목을 맬 정책발표가 아니라서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캐나다 시민으로서 캐나다 수상이 UN에 처음 가서 무슨 말을 했는지 관심이 갔다. 같은 날짜의 신문에 오바마의 연설 비디오와 기사도 나서 덩달아 시청했다.


 오바마는 임기말 레임덕은커녕 인기가 여전히 낙하산의 하강을 거부한다. 


 노벨 평화상도 타고 53년 동안 단절됐던 쿠바와의 국교도 다시 연 사람이니 북한에 대해서도 뭔가 업적을 남기지 않을까 초장엔 기대됐다.


 굳이 말하자면 북한은 한반도 평화의 독립변수가 아니라 함수관계가 아닌가.


 하지만 임기 내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만을 고수하다 빈손으로 하차할 모양이다. 
 트뤼도 연설의 키워드가 ‘우려(anxiety)’라면, 오바마의 키워드는 ‘역설(Paradox)'로 짚인다.
 정치가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트뤼도는 말한다.


 하나는 국민의 ‘우려’를 악용하는 자, 다른 하나는 선용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 말이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를 빗댄 것 아니냐는 역풍을 불렀다. 뉴욕 등지에서 폭탄을 터뜨린 게 중동의 무슬림들이니 그 ‘우려’를 제거하자면 그들을 미국에 들어올 수 없게 하자는 게 트럼프다.


 반면 트뤼도는 시리아 난민 3만1천 명을 받아들였고 처음 입국하는 그룹을 맞이하기 위해 비행장까지 나갔다.


 ‘사회의 다양성은 강점이지 약점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확실히 테러나 인종차별의 ‘우려’를 악용하는 게 아니라 선용하려는 정치인이다. 


 "세계는 더욱 발전하고 있으나, 오히려 난민 사태, 테러 불안, 기후 변화 등과 싸우고 있다”라며 "이것이 오늘 우리의 세계를 정의하는 역설"이라고 오바마는 말한다. 


 그의 ‘역설’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최후의 군사적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교’가 유일한 해결책이다.”라고 말하지만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아프가니스탄의 철군은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언술에도 ‘역설’이 존재한다.
 핵전쟁의 발발을 막는 것은 남아 있는 도전 과제라며 미국 등 모든 핵보유국이 핵실험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는 연설했다.


 하지만 모든 나라들의 어떠한 핵실험도 금지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 20년째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 의회의 반대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역설’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가 경고에 얼마나 무게를 실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 정치인이 아닌 트럼프와는 DNA부터 다르다 보니 아무래도 ‘역설’을 더 고민하진 않았을까.


 흔히 핵은 정치적인 무기라고 한다. 정치적인 무기라면 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할 거 같다. 만약 트뤼도가 오바마였다면 어떤 접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정치적인 협상을 통해 ‘우려’를 누그러뜨리는 행보를 보여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어디까지나 연설의 수사학만으로 추측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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