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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光復)의 그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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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光復)의 그 무렵
 

 

 

난생 처음 영화를 본 것은 그 도시에서였다
제목도 잊히지 않는 ‘검사와 여선생’
검사의 남자 목소리도
여선생의 여자 목소리도
남자 변사 한 사람이 1인2역

 

그 무렵 역 앞 광장에선 신나는 광경이 벌어졌다
거리에 세운 축구 골대가 온통 생솔 가지로 덮이고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 듯
미친 듯이 만세를 부르고 깃발을 흔들며
그 문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역 앞 광장에선 다른 광경도 벌어졌다
널판에 죽은 사람을 묶어 세워 놓은 것이다
그 위로 파리가 들끓었는지
총 맞은 자리가 어디였는지 기억에 없다
사내의 입과 콧구멍엔 솜뭉치가 박혀 있었다
소년은 이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서서 본 그 영화는
변사가 슬픈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밤하늘의 별이 눈물 속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어린 소년에겐
사람들이 왜 그리 신나게 만세를 불렀는지
왜 죽은 사람을 대낮 광장에 세워 놓았는지
둘 다 변사가 없는 무성영화였다.

 

 

 

*덧붙이기: 지난 15일(월) 저녁 토론토한인회관에서 광복 71주년 경축식이 있었다. 국사를 배울 때 귀가 아프게 듣던 일제식민통치36년. 마치 삼국시대처럼 장구하게 각인된 시간이었는데 어언 그 2배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5살짜리 소년의 망막에 찍힌 그날의 광경은 천지개벽이 되더라도 풍화되지 않을 것 같다. 광복(光復)은 빛과 함께 그늘도 따라붙었다. 바로 민족의 분단이었다. 


경축식 다음에는 신창민 님의 통일강연이 이어졌다. 3백여 명의 참석자는 강연이 시작되자60명 정도로 줄었다.


통일은 대박이다… 외쳐 봐야 악화된 남북관계로 공허한 메아리의 현주소였다. 강사는 보수의 안보 위주만으로, 진보의 평화 위주만으로도 통일을 가져올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런 그가 다음에도 10년 동안 보수가 집권했으면 한다는 자기모순의 결론을 제시했다. 굳이 삼천포로 빠지는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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