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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사랑
leesangmook

 

 

 뮤지컬이 화제다. ‘Come From Away'라는 캐나다 토산물이다. 내년 3월엔 뉴욕의 브로드웨이로 진출한단다. 오늘 아침 잠결에 7시 뉴스를 들으니 상연하는 로열 알렉산드라 극장의 티켓 세일이 기록을 바꿨다고 한다. 


 며칠 전 기사는 가십(Gossip)도 하나 전한다. 극장은 근래 새로 단장했다. 백년이 넘은 건물을 레노베이션 한 것이다. 천장벽화도 땟물을 닦아냈다. 벽화에는 활을 든 미소년이 있다. 완전나체다. 바로 옆엔 풍만한 두 여인이 서 있다. 


 근데 미소년의 다리 사이에 괴이한 물체가 보인다. 어른의 팔뚝 크기다. 저게 뭐야? 관객들의 눈이 접착된다. 팔뚝은 핑크빛 살색이어서 상상력을 건드린다. 거대한 남성의 상징이 무릎까지 뻗쳐 있는데 어린 소년에겐 초대형이 아닌가. 미소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다. 


 로마 신화에서는 큐피드다. 에로스는 사랑의 신으로 두 종류의 화살을 가지고 다닌다. 금화살을 맞으면 바로 눈앞의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납화살을 맞으면 눈앞의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르네상스 때 그린 그림들을 보면 에로스는 남자의 상징을 굳이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백 년 전 벽화를 그린 캐네디언 화가는 좀 얌전했나 보다. 남성의 상징을 화살통으로 가렸으니 말이다.


 ‘Come From Away'는 뉴펀들랜드의 속어로 ’외지인(Outsider)'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뮤지컬의 주제로 봐 ‘길손’이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2001년 9월 11일 뉴펀들랜드의 갠더(Gander)국제공항에 38대의 여객기들이 불시착했다. 뉴욕에서 9.11테러가 일어나 미국으로 들어가는 하늘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승객들과 승무원 등 6천5백 명이 갑자기 ‘길손’들이 됐다.


 갠더는 인구 1만 명의 작은 타운이다. 갑자기 밀어닥친 ‘길손’들은 재앙이었 다. 하지만 즉시 팔을 걷어붙인다. 임시 잠자리들을 제공하고 식사를 준비한 다. 전 주민이 일제히 ‘선한 사마리아인’이 된 것이다.


 뮤지컬 ‘길손’은 바로 이 ‘길손들’과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어떻게 비상사태를 극복해 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지루하기 쉬운 줄거리는 생략하자. 실제상황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그 중 한 에피소드는 이렇다. 승객 중 브룩스 존스라는 여인이 있었다. 비행기가 불시착하자 처음 28시간은 기내에서 대기해야 했다. 상황이 쉽사리 풀리지 않자 승객들은 갠더에서 더 떨어진 어촌으로 옮겨진다.


 사흘을 머무는 동안 어촌 주민들은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보상도 거부했다. 비행기를 다시 타게 됐을 때 브룩스는 펜과 종이를 돌렸다. 갠더의 어린이들을 위한 장학금을 모으자는 거였다. 그 자리서 1만5천불이 모였다.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장학금 사업을 계속해서 2백만 불로 불어났다.


 사랑은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에로스’는 육체적인 사랑이다. 정신적인 사랑 의 ‘아가페’도 있다. 길에서 이뤄지는 사랑은 쉽게 말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이다. 불시에 일어나는 그런 사랑은 한국의 촛불집회에서도 발견된다. 


 광장에 눈이 내리는 날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무료 김밥을 제공하거 나 따뜻한 보리차를 대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처럼 이웃을 배려하고 대가 없이 공익에 복무하는 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아닌가. 


 ‘길 위의 사랑’ 때문에 세상은 덜 삐걱거리고 굴러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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