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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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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색다르다. 김종삼의 시 ‘북치는 소년’을 호출해 본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중략)” 


 이 시가 써진 것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 게다.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나 ‘북치는 소년’ 캐롤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가 당시 배고프고 가난한 아희들에겐 한낱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그건 이 나이까지의 내게도 무심코 지내온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아니었을까.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국가수반의 성탄인사가 발표됐다. 하나는 캐나다 수상 트뤼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다. 트뤼도는 먼저 금년 5월초 앨버타주 포트 맥머리에서 발생한 대화재를 언급 하면서 구조에 나섰던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미국 대통령의 경우 매년 크리스마스 인사는 동영상 연설로 연출된다. 그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이다. 먼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오바마는 “우리는 8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불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실업률이 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천만 명의 미국인을 위한 건강보험을 확보했고, 아이들을 위해 지구를 지키는 싸움을 수행했다.”며 “미국은 더욱 존중받는 나라가 됐다.”고 했다.


 트뤼도나 오바마나 둘 다 통상적인 ‘축하’ 대신 ‘회고’로 시작된 서두였다. ‘회고’로부터 그들은 메시지를 도출해낸다.  


 “캐네디언들은 거리에 상관없이 서로 돕는다. 이게 바로 캐나다다.”라고 트뤼도는 짚어낸다.


 오바마의 메시지는 “크리스마스는 신앙이나 출신이 다르더라도 자비와 희망이라는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데 있다.”라고 짚는다.


 해서 나 역시 올해 처음 크리스마스의 개념을 ‘축하’에서 ‘회고’로 포맷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으니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한국 어느 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로 은퇴한 군대 동기다. 반세기 이전 고작 3개월 군대교육을 같이 받았을 뿐 전혀 교류가 없던 사이다. 손 한번 잡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얼굴과 이름조차 맞출 수가 없었다.


 실오라기 인연이 우연히 되살아난 건 페이스북에서다. 그는 금년 초 발간된 내 시집 몇 권을 주문해서 그 도시에 있는 대학도서관들을 찾아다니며 기증을 해줬다. 뜻 아니 한 그의 마음씨는 내 상식에 금이 가게 했다. 생소한 경험이라 거기서 어떤 메시지를 짚어내기란 난감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크리스마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작은 불씨임은 분명했다.


 한데 이처럼 회고와 다짐의 계절에 돌연 찬물을 끼얹는 자들이 나타났으니 웬 낭패란 말인가. 좌충우돌의 두 악동 트럼프와 푸틴이 핵무기를 더 만들겠다고 공포 마케팅 발언을 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이미 7천기가 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의 93%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핵무기는 인류의 멸종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미국의 오바마와 이전의 행정부는 소련과 핵무기 감축을 끈질기게 협상해 왔다.


 그런데 푸틴과 트럼프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화해의 ‘성탄 메시지’ 대신 이들은 공포의 ‘폭탄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트뤼도와 오바마 그리고 작게는 한국의 군대시절 친구가 보여준 가치, 즉 ‘공유해야 할 가치(values we share)’를 앞으로 어떻게 지켜낼지 은근히 염려되는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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