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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오른다
leehyungin

 
 
 오랜만에 신문 첫 페이지에 우리 동포사회에 해가 뜬다는 소식이다. 주먹만한 글씨로 대서특필 된 것을 확인하며 놀라웠다. 아리랑요양원(가칭)의 깃발을 꽂는다는 기사다.
요즘 세상살이가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찌푸리며 걱정 근심으로 또한 불안과 염려로 살아가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기에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매일 펼쳐보는 신문의 기사거리들 읽기가 참으로 난감하고 야속한 사연들로 거의 날마다 채워져 있지 않았던가.


 각별히 의도적인 편집으로 지면을 메우려고 하진 않았겠지 이해하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참으로 험난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새 요양원 건립작업 본격화) 동포사회에 밝은 해가 떠오른다고 모처럼 하늘을 펼쳐 보이는 것 같다.


"구김유정" 사자성어가 아니다. 기라성 같은 4인의 성씨들(구자선, 김연백, 유동환, 정창헌) 4인의 이름이다. 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 들었다.


생업을 제치고 노년을 위하여 우리도 못할게 무엇이냐고 팔뚝까지 걷어 올리며 동아줄을 끌어내린 것이다.


350만불의 불꽃이 밝혀주던 한 해가 가기 전에 또다시 촛불을 밝히려나 보다.


중국인들 850 침상 보다야 겨우 130여 침상이란 초라함에 가슴이 움추러들기도 하지만, 수백만을 웃돈다는 그 이민자들의 삶의 형태야 산지사방에 정착하여 이 나라의 한 모퉁일 점령하다시피 대단한 민족이 아닌가!


참새가 기러기와 날개를 어찌 비교할까만 시작이 반이란 진리를 터득하고 실천한다면야 이루지 못할게 없다고 활개를 치며 첫발걸음을 함께 한다니 대담하고 기발한 착상에 박수를 친다.


몇 년간을 투신하여 종자돈을 마련했던 과정에 설왕설래 소리소문들, 350만불의 행방이 찢기어 반쪽이 되어버린 오늘의 결과가 안타깝기 그지없다지만, 10만 동포사회가 어찌 한 목소리로만 대사를 치를 수 있을까!


몇 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기부금의 산출내역을 추산해본다면, 이런저런 수단과 방법들 참으로 대견하고 야무진 발상들이 총동원되지 않았다면, 어찌 그 거금의 기부금을 산출해낼 수 있었으랴!


누가 뭐래도 동포사회 언론사들과 종교단체들이다. 반세기 이민사에 남다른 투지와 열정으로 부를 창출한 홍길동 같은 인사들, 아니 동포사회의 블룸버그나, 스티브잡스와도 비슷하게 넉넉한 대열에 끼여든 준재벌들의 활발하고 열띤 참여가 없었다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그런데 10만 동포들 가운데 1500여 가족들로 하여금 활력에 불을 뿜어냈던 것이다. 이제라도 불씨가 되어 한번 하자고 덤벼든 억척스런 발길이 힘차게 출발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했기에 손바닥을 처가면서 불가능의 실체를 가능성의 성취란 도전에 횃불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건전하고 의젓하게 걸어온 반세기 동포사회를 보자.


가방 하나 들고 빈손으로 이 나라에 정착한 너와 나의 초창기 이야기들, 정착지에 무지했었지만 우리는 열정을 다해 이 나라에 정착했다. 오직 근면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던 반세기의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우리가 악을 쓰고 견디어왔던 오늘의 우리 동포사회의 주변을 살펴보자.


미확인된 3백여의 교회들, 중형, 대형교회들 거의 모두의 자산을 창출해낸 자기 교회건물들 마련했다.


요양원의 침상이 먼저일 것 같은데, 영혼구원을 위한 몸된 교회건물이 첫 번째라면 하나님의 각별한 배려였을까?


한인회, 노인회까지도 아쉬움 속에서도 우리들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반세기 전에 유대민족 자산의 기본이었던 구멍가게들, 오늘의 ‘실협’이란 단체가 바로 그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골목가게 형태 같은 그런 상태의 가게들 우리 민족끼리 파고들어 3천에 육박했던 곳곳에 운영의 묘를 천번 발휘하여 오늘의 ‘온타리오실업인협회’를 알뜰히 운영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단체가 자금유통이 활발하게 넘실거려 동포사회에 건실한 단체를 지원하겠다고 공론을 펼쳐 보이고 있다. 몇 천불씩 월급을 받는 신재균 협회장이 아니다. 물론 나이아가라에서 출퇴근하는 경비야 당연히 협회예산에서 보충해 주겠지만. 


어느 누가 형편이 어찌되었든 헌신과 봉사라는 사회단체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당연지사 수고비나 활동비라는 명분에 결코 연연할 자리는 아니라는 문제에서 가슴을 비워야 할 것이다. 생업을 제치고 혼신의 힘을 쏟아내야 하는 그 자리라는 기본적 헌신으로 최선을 다할 때라야 부작용의 틀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감투라고 완장이나 찾는 자리 역시 아니다. 자기 주머니 털어내며 순수한 열정 하나만이 주위를 밝힐 수 있는 등대불이란 말이다. 떳떳하게, 깨끗하게, 아담한 동포사회를 위하여 오직 헌신과 봉사라는 의미만을 창출하는 것이 곧 목적을 향한 힘이다.


‘아리랑 요양원’ 4인의 역사적 효의 안방을 향한 따뜻하고 오붓한 발돋움에 동참하기 위하여 기대를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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