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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따라 가버린 사람
leehyungin

 

고 박주삼님

 

 


 
낭만과 추억이 황홀하게 가슴을 안아주는 계절을 맞이했다. 가을을 여미는 낙엽 떨어지는 소리는 없지만 바람에 날려 뒹굴어대는 모습은 허무하고 초라하다 못해 쓸쓸하기 그지없다.


눈길로 가슴으로 형형색색 아무렴 욕심부려 황홀함을 덧입혀 보고 싶은 계절이라지만, 역시 가버린 사랑만큼이나 아쉽고 처량하다. 오죽하면 오래 전에 유행했던 유행가 가사마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라 했던가.


예년이나 틀림없는 계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다가왔다. 산천초목이 초자연적 생태계의 리듬을 타고 온누리를 곱게 물들이면서, 옷깃을 쥐어짜면 주르르 색감이 흘러내릴 것만 같은 흥건함이 낙엽 속에 비춰진다. 


아름다움의 극치요, 완성이다. 놀라움의 신비다. 오색찬란한 색체들에 나의 몸과 마음을 주체없이 물들이고 싶다. 이토록 황홀하고 로맨틱한 자연을 뒤로 하고 이 세상과의 인연을 뿌리쳤다. 인정이 넘치던 그 사람은 우리 곁을 말없이 훌훌 떠났다.


남다른 체력과 정신력으로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쇳덩이 같았던 그의 삶이었건만, 결국 떨어지는 낙엽 따라 함께 가버렸다. 의식은 가을잎에 흩날려 버렸는데 죽음이란 넋을 잃어버린 생명의 형체만이 분칠을 하고 누워 있었다. 


탐스럽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조화들이 그의 관을 에워싸고 있는데, 어허! 그걸 어찌 천국으로 가져 가려나? 우버의 배달도 가능하다면 좋으련만, 숨죽이며 고개 숙여 애끓는 조문객들의 발걸음은 또 어찌 살펴보려나.


잔디밭을 많이도 걸었다. 남다른 골프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신출귀몰, 말 그대로 귀신 같은 숏게임의 달인이기도 했다. 병상에 눕기 전 몇 년간 체력의 한계를 직감하고 파워카트를 타고 라운딩을 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그의 건강은 그를 끝내 낙엽과 더불어 앗아가 버린 것이다.


몇 개월 전의 그의 모습이 새롭게, 혹여 동영상을 보는 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제 생각하니 그때 그의 모습은 주위 친구들을 향한 준비된 유언이었다. 세상에, 그 장소 그 시간 왜 그의 표정이 그토록 진지하고 심각했었을까? 이제야 생각이 난다.


세상을 살아오며 왜 더 열심을 다하지 못했을까? 어찌 이렇게 멍하게 주위 친구들에게 무심했을까? 내 가족들과 좀더 사랑의 관계를 의롭게 다독거리며 살았어야 했는데, 내 것만 아끼려고 남의 호주머닐 노렸던 잘못도 있었다. 부끄럽고 후회스럽기에 용서를 빈다.


너무 늦었나.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내 인생 내 주위사람들과 더불어 최선을 다하며 남은 삶을 살고 싶다. 바로 몇 개월 전으로 기억하건대 그의 마음이 예비되었던 틀림없는 유언이 아닌가.


살인마 같은 암이라는 최면술에 견딜 자 어느 누가 있으랴. 이 시대가 아무리 초현대적 의술의 힘찬 개혁으로 인간생명을 백방으로 치료한다 할지라도 수백만의 암세포를 아직도 점령할 수 없음을 우리는 인정하며 어물어물 살아가고 있다. 폐암이란 질병의 악화로 절벽에서 결국 흩날리는 낙엽 따라 가버린 것이다. 


평생 함께한 사랑스런 아내와 자식들의 뜨거운 눈물이 장의사의 밑바닥을 흥건하게 적시었건만, 관속에 누워 있는 그는 흙더미 속을 예약해버린 넋 나간 시신이었다. 


나무 등걸처럼 무정한 그 모습은 누군가 앗아가버린 그의 혼을 운명의 집행자마저 절단해 버린 것이다. 저토록 살아있는 가족들의 애닯은 슬픔이 운명의 신 앞에 안타까움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관 속엔 혼을 몽땅 도용당한 시신만이 사람의 형상만으로 꿈쩍도 않고 누워있다.


각본처럼 성당의 유인물에 쓰여진 대로, 구원하소서, 돌보아주소서, 기억하소서, 위로하소서, 그의 수고를 빛내주소서, 신부님의 장례집전은 하늘로 향한 순종의 울부짖음일까? 조객들의 절박한 슬픔을 위한 선포였을까? 유가족들의 눈물을 훔쳐주는 손수건이었을까?


아리송한 종교의전의 절차와 지배하신 영의 소관을 구분할 수 있는 길은 "무조건 믿는 것”이라지만 이미 떠나버린 넋을 위하여 호소하는 습관적 장례행위의 모습은 과연 천국을 향한 호소력으로 어떻게 간구되어 질것인가? 


범벅이 된 눈물바닥에 속이 터져라 몸부림치는 온가족의 쓰라리고 애통하는 슬픔만이 미어지는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고개 숙인 조객들의 비통한 발걸음에 나뒹구는 가을잎의 처량한 슬픔과 함께 하면서, 그토록 왕성하던 푸르름은 어찌하고 낙엽의 초췌한 모습처럼 흩날리며 바람 속에 구름처럼 떠나버렸을까? 


 예비된 운명의 수순과 절차는 온갖 세상만사 벗어던진 최선의 선택이 이 길밖에 없는 걸까? 영생을 누리는 길은 결국 구르는 낙엽과 동행자 되는 그런 길 뿐이란 말인가?


 영혼이 평안을 누린다는 그곳엔, 그래 남은 유가족들과 조객들의 미어지는 슬픔들은 어찌하라고… 이 가을을 뿌리치며 떠나버린 그곳에서 영생을 누리소서! 


(이 글을 살아생전 함께 했던 박주삼 전 온주실협 이사장님의 영전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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