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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릴로(Lilo)
leedohoon

 

 

 

2014년 12월 18일


 가끔 볼 일이 있어 도시에 나가면 나도 시골사람이 다 되었음을 느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심 속의 깨끗한 차량들과 많은 사람들은 흙먼지를 잔뜩 덮어 쓴  촌티나는 커다란 시골 트럭의 혼을 쏙 빼놓는다.


 빠른 걸음으로 혼잡한 도시를 빠져 나와 며칠 전에 내린 눈을 잘 치워놓은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동네 어귀에 들어서니 이내 포근한 어미의 품에 안긴 것 같다. 정겨운 동네길을 지나 집앞에 다다라 잠긴 대문을 열려고 차에서 내리면 집을 지키던 세 마리의 개들은 재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약 150미터나 되는 거리를 세 마리중 가장 어리고 날렵한 릴로(Lilo)는 엄마인 쥴리(Julie)를 앞지르고 선두에 서고, 쥴리 그리고 새이디(Sadie)  순서로 빠르게 달려와 주인을 반긴다. 


 그런데! 오늘은 쥴리가 혼자 뛰어 오고 있었다. 서둘러 차를 대고 릴로와 새이디를 부르니 새이디가 혼자 뒷산에서 달려왔다. " 릴로는? "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어 새이디가 달려온 뒷산을 향해 아무리 불러도 릴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동네를 돌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차를 몰았다.

 " 혹시나 사고를 당했으면 흔적이 있겠지? "  " 뒷집에 놀러 갔나? "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동네를 돌아봐도 릴로를 찾을 수 없었다. 동지 전이라 일찍 어둠이 드리워 찾는 것은 뒤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 왔다. 기대와 달리 릴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14년 12월 19일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이라 창밖은 아직 캄캄하다. 혹시나 밤사이에 릴로가 돌아왔을까 해서 가보았다. " 없다! " 잠을 설친듯 피곤해 보이는 쥴리와 새이디에게 릴로가 어디에 갔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얼마간 지나니 어두움이 걷히고 이내 동네를 돌기 시작하였다. 지나가는 스쿨버스를 세워 릴로를 보았나 물었고 이집 저집을 두드려 릴로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인근에 있는 여러 곳의 휴매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에도 실종 신고를 했다.

 

 또 하루가 간다. 쥴리와 먹보 새이디가 밥을 거른다. 나이가 많은 쥴리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 보이고 막내의 재롱을 좋아하던 새이디는 힘없이 누워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다. 릴로를 본 것 같다는 동네사람의 전화에 몇시간을 헤매기도 하였다. 연세드신 큰형님께서는 "내 생각에는 그놈이 꼭 집으로 돌아올 것 같아! " "걱정말고 기다려 봐!" 하시며 힘들어 하는 우리를 위로하신다.

 

2014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바라는 아이처럼 릴로를 선물로 주실까 기다린다. "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주신다네! "


 눈가에 맺혀진 이슬을 산타 할아버지께서 보신 것 같다. 오늘도 릴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2015년 1월 1일


 청양의 새해가 밝았다. 릴로가 집을 떠난 지도 벌써 보름이 되었다. 쥴리와 새이디도 이제는 잊기로 했는지 눈 덮인 밭을 이리 뛰고 저리 뒹굴며 새해맞이에 바쁘다. 

 

2015년 2월 13일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일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오후 2시 정도 되었을까?  전화 벨소리에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였다. 밀튼 에니멀 컨트롤(Milton Animal Control) 이라며 혹시 잃어버린 릴로의 사진이 있으면 보내 달라고 하였다. 마침 지니고 있는 사진이 있기에 몇장을 보내겠다고 하고, 무엇때문이냐고 물었지만 그냥 확인할 것이 있어서 라고 하였다. 아무런 생각없이 사진을 보내고 다시 일을 시작한지 두 시간 가량이 지나 또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에니멀 컨트롤인데 우리가 네 집에 와 있어! " 갑자기 가슴이 덜컹했다.우리 쥴리와 새이디가 무슨 잘못을 했나?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대고 있는무척이나 짧은 시간 동안 너무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 우리가 너희 개를 데리고 있는데 지금 올 수 있나요?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말도 안돼! 우리 릴로가 맞어요?" 너무 황당한 일이라 그의 말이 사실로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 속 한켠에는 릴로가 맞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다.

 

 밀튼 시청(Milton City Hall) 뒤쪽으로 차를 몰아 에니멀 컨트롤 사무실에 도착하였을 때는 날은 벌써 어두워졌다. "혹시 릴로가 아니면 어떻게 하나?" 릴로가 아니면 무척이나 실망을 할것 같아 두렵다.


 우리가 도착한 것을 알고 어두움 속으로 목줄을 매고 있는 개 한마리를 데리고 온다. 릴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릴로? 릴로?" 하고 부르니 어둠 속에서 목줄을 한 개가 갑자기 뛰어 오르는게 아닌가? 훌쩍 뛰더니 내 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분명히 릴로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기뻐서 부둥켜 안고 눈위를 뒹굴며 꿈이 아니기를 바랬다. "릴로, 너 맞아? 맞지? 맞네!...."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연신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두달 만에 우리를 만난 릴로의 눈가도 촉촉히 젖어 있었다. "쥴리와 새이디가 너를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어!" "릴로, 이제 집으로 가자!"


 잃어버린 릴로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몇해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내 아버지도 "이렇게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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