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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장새 작다 하고
leed2017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반에서 키가 제일 작은 아이였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키가 작아서 팔을 들어 앞에 선 아이 어깨에다 조준을 해서 줄을 마치는 ‘앞으로 나란히’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키는 대학교 들어와서부터 어른의 키, 지금의 키로 부쩍 컸지요.

 키가 작아서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그만 놈이 공부도 잘하니 귀엽다면서 반 뒤에 키 큰 녀석들이 어른스럽게 굴려는 녀석도 간혹 있었지만 괴롭히거나 시비를 걸어온 적은 꼭 한 번, 고등학교를 대구에 가서 새 학교에 입학했을  때 반에서 제일 쬐끄만 녀석이 시비를 걸어온 것 말고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불이익이라고 한다면 이성(異性)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불어갈 때 반에 큰 녀석들  이야기에 끼여들려고 하면 “어른들이 말씀하고 계시다. 너같은 아(아이)들은 가서 숙제나 해라”면서 하던 이야기를 뚝 끊을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셋째 누나와 같은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셋째 누나는 키가 작아서 키에 컴플렉스가 있는지 육상부에 들어가서 선수도 하고 대대장 감투도 쓴 것 같은데 나는 옆집 푸들강아지처럼 키는 작아도 귀엽게 구는게 나의 생존책이었습니다. 셋째 누나가 결혼할 때는 키가 큰 전봇대를 원했는데 결국 낙찰된 것은 키가 조그만한 남자 아담 사이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일에 큰 것을 좋아합니다. 낚시도 월척(越尺) 큰놈을 좋아하고 학교도 큰학교, 신랑감 키가 가물가물 전봇대를 좋아하지요. 한번은 내가 아내를 보며 “내가 중매로 결혼했으면 키가 커서 인기가 있었을텐데…”하며 자랑을 했더니 “당신같은 사람은 키라도 커야지요”하는 짧은 대꾸를 해왔습니다.

 크고 장대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 새(鳥)나 개 같은 동물은 물론 산이나 강도 큰 것을 좋아합니다. 나이가 500년, 600년이 된 큰 나무 앞에 서면 어릴적에 존경하는 어른  앞에 선 양 외경(畏敬)과 존경심이 갑니다. 강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미시시피나 중국의 양자강 앞에 서면 왠지 몸가짐이 근엄해지고 엄숙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옛시조에 다음과 같은 시조가 있어서 적어 봅니다.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아 웃지 마라

구만리 장천에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일반 비조니 네오 귀오 다르랴

 

 이동렬의 시조풀이 ‘꼭 읽어야 할 시조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이 적혀 있습니다. 굴뚝새가 몸집이 작다고 하여 한숨에 9만리를 난다는 대붕새야 비웃지 마라. 구만리 넓고 넓은 하늘을 너도 날고 감장새도 날아다니지 않느냐. 다같이 하늘을 날아 다니는 새인데 너나 굴뚝새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

 지은이는 숙종 때 무인 이택이라는 사람입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해학적으로 옮겨놓은 시조로 볼 수도 있고 문인만 떠받들고 무인은 멸시받던 당신의 시대풍조를 빗댄 노래로 볼 수도 있겠지요. 아마 후자의 경우일 것 같습니다.

 서울 강남 청담동 같은 부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아 달동네에 사는 우리같은 사람을 비웃지 말아라. 너나 나나 하루 세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냐.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35살 나이에 자살을 한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귀족들이 젠체 못하는 것은 그들도 측간(변소)에 오르기 때문이다”는 말과 같이 굴뚝새의 배짱과 패기만 있다면 금력과 권력이 판치는 세상인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1999년 가을 학기부터 2006년 봄까지 한국 E여대에 가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강서구 등촌동 어느 작은 콘도미니엄에 방을 얻어 소꿉놀이 같은 살림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물고 들어 왔습니다. 아내가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니 동창들이 “어디 사느냐”고 묻기에 등촌동 봉제산 밑에 산다고 했더니 친구들 말이 대번에 “딴데로 옮겨라”고 하더랍니다. 등촌동은 새(鳥)로 치면 굴뚝새니 그런데 살면 사기(士氣)와 자존심이 해를 입는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내가 E여대에 있는 동안 강서구 등촌동에 산다고 적은 학생은 그 많은 학생 중에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강서구에 산다는 것이 자랑스럽지 못해서 밝히기가 싫어서 그런가 봅니다.

 굴뚝새건 대붕이건 이 세상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마음 먹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 마음 먹은데 따라 이 세상은 지긋지긋한 지옥일 수도 있고 극락일 수도 있습니다. (202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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