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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났으면
leed2017

 

 나는 가끔 “내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봅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 이를테면 전공이라든지 학문의 길을 걷는 것은 별로 다를 것이 없었지 싶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자식은 지금처럼 둘만 두는게 아니라 11명쯤 두었을 것입니다(문제는 내 신랑이 그럴 힘이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흥부처럼 가난한 집에서 자식은 왜 그리 많아…” 하는 동네 사람들의 탄식은 피하기 어려웠겠지요.

 조선 역대 임금 중에 8남 4녀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왕후의 기록을 넘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세종의 8남4녀의 기록은 소헌왕후를 빼고도 미인 궁녀 다섯사람의 자궁을 빌렸지 않습니까. 나는 한 배에서 11자식을 생산했으니 소헌왕후의 기록보다 나은 것도 없지마는 못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11=12라는 어처구니 없는 등식이 성립되지요.

 요새는 온몸을 짜깁기 하는 성형수술은 물론 성(性)까지 남자에서 여자로, 혹은 여자에서 남자로 바꾸는 성전환 수술도 한다니 놀랍기도 하고 겁도 납니다. 여권(女權) 신장이다 뭐다 하며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고함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데 앞으로 몇 백년 더 있으면 남성보다도 여성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여자로 수술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 않겠지요.

 옛날 조선때처럼 어른들이 함께 살 짝을 찾아 인연을 맺어주던 시절에는 개성이란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함께 지낼 사람은 자기 취향에 맞게 자기가 직접 고르는 요새 세상에는 남자건 여자건 그가 풍기는 개성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게 되었지요.

 이 개성이란 것도 요새는 돈만 있으면 성형수술도 있고 ‘코디(맞나요?)’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화장은 어떻게 하고 옷은 어떻게 입고, 손톱에 칠하는 매니큐어, 목에 거는 넥타이에 대해서도 전문적 충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도 여자였으면 성형의사나 코디 직업의 사람에게 전문적 의견을 물어 내 자신을 아주 포장이 잘된 상품으로 만들어 놓지 싶습니다.

 나는 여자로서 나의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몇번 했다고 이혼을 제의하거나 부부싸움 한번 했다고 친정으로 달려가는 그런 여자는 아닐 것입니다. 신랑한테 뺨이라도 한대 맞으면 나도 같이 한대 올려 붙이는 그런 용맹무쌍한 무인정신은 내게 없습니다. 아내에게 손을 대는 남편은 가장으로서는 가장 천박한 남편이니 내가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일 것입니다. 얻어맞으며 살 필요는 없지요.

 이혼 말이 났으니 말인데 조선시대 남녀관계 율법이던 칠거지악을 들먹이는 것은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이 허황스러울 것입니다. 요새 구 칠거지악(七去之惡) 대신 신 칠거지악이 있다 해서 컴퓨터 키를 두들겨 봤더니 다음과 같은 우스개 칠거지악이 눈에 띄어 여기 옮겨봅니다.

 첫째, 따로 따로 노는 부부, 둘째 계속 밖으로 나도는 부부, 셋째 서로 험담만 하는 부부, 넷째 돈돈 하는 부부, 다섯째 달달 볶는 부부, 여섯째 퉁명스런 부부, 일곱째 말이없는 부부. 내 생각으로는 이런 칠거지악에 걸려들지 않는 부부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여성으로 태어나서 장담을 전혀 못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은 천운(天運)에 달려있는 것으로 봅니다. 다행히 좋은 사람 만나 나를 신혼 때처럼 변함없이 사랑해주면 다행, 첫 아이 낳고 남편의 눈길이 초점이 없고 사방으로 흩어지면 나는 어떡하지요? 이것만은 내가 100% 통제권을 가질 성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에는 며느리를 두 사람이나 번갈아 쫓아낸 세종대왕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종 아들 문종의 첫 번째 부인 김씨와 두번째 부인 봉씨를 말합니다. 이들 며느리 둘 다 문종과는 소원한 관계였다지요. 문종이 부인을 멀리 했다고 다른 여자들한테 열정을 쏟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남편 되는 사람이 자기에게 무심하게 대해주니 첫째 부인 김씨는 ‘사랑의 묘약’을 쓰다가 발각되어 쫓겨나고(사랑의 묘약이란 뱀이 교미를 할 때 흘린 정액을  수건에 받아 허리에 차고 있는 것) 둘째 부인 봉씨는 남편이 자기한테 오는 발길이 뜸해지자 여종 소쌍과 동성애의 추행을 벌이다 쫓겨났습니다.

 시조 시인 백수(白水) 정완영에 의하면 결혼생활은 3단계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즉 20대 갖 결혼해서 애정(주로 성적인 사랑)에서 출발하여 50대의 정(情)으로 70대의 낙(樂)으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며느리들은 20대 애정단계에서 남편의 성적 사랑을 더 받으려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닙니까. 세종도 그런 아들을 달래고  닥달했지만 별 수가 없었던지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고 합니다.

 

‘금슬이 저리 좋지 않으니 아무리 부모라 해도 침실의 일까지 어찌 자식에게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이 글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생각은 지금 21세기에 하기 보다는 22 혹은 23세기에 가서 해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20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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