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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 신고
leed2017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6.25 전쟁의 흔적이 사방에 널려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입학시험을 치르러 서울에 왔을 때는 머리도 기르지 않는 순도 100% 자연산 더벅머리 소년이었지요. 입학만 하면 선배들이 와서 “나하고 형제가 되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신입생 신고식이란 말도 없었으며 나한테 인사를 거는 선배 하나 없었습니다.

 숨통이 막히던 고등학교와는 달리 조물주는 무한의 자유를 이 더벅머리 앞에 쏟아놓고 갔습니다. 학교 가는 것, 책을 읽는 것, 어떻게 행동하는 것, 모두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사람 하나 없는 완전한 자유였습니다. 하기야 “동렬이 너도 이 책 한 번 읽어볼래?” 하는 충고의 말도 해주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설령 있었다 해도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놈”으로 기고만장하던 그 시절에 이 따위 충고가 귀에  들어왔겠습니까?

 가끔 신문에 나는 (보통 정도가 지나쳐서 신문에 나는) 신참신고식 이야기를 보면 “참 황당한 녀석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신고식에서는 선배들이 신입생을 한 줄로 세워놓고 아무런 이유 없이 두들겨 패고(이것도 한 두 번 쥐어박는게 아니라 정신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팬답니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 술을 강제로 먹이고, 캄캄한 밤중에 자동차에 싣고 낯선 곳에 가서 내려놓고 온다든지, 하여튼 내가 보기에는 바보같은 짓만 골라러 하고 남들에게 큰 괴로움을 안겨주는 짓거리를 신참 신고식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신고식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겠다” 싶은 호기심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 이기환이 쓴 ‘흔적의 역사’에 따르면 신참신고식은 고려 우왕 때부터  시작하여 조선 관리들에게로 전해왔다고 합니다. 시작은 자기 실력이 아니고 부모의 권세나 입김으로 관리가 되어 천방지축 까불어대는 신참이나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의 기(氣)를 꺾어놓는 수법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시작된 신참식은 600년을 이어 와서 오늘에 이른 것이지요.

 모든 조직원들이 한결같이 같은 행동과 생각을 하고 대동단결을 해야하는 군대조직  같은 데서는 신참식이 어느정도 있어도 좋겠다는 수긍이 갑니다. 선배 혹은 고참말 잘 들어야지 너 혼자 잘났다고 까불지 말라는 말은 군대조직에서는 절실하지요.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오늘날 세상에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소신대로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사회에서는 신참이라 해서 무조건 선배들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그러니 앞으로 세월이 가면 신입생 신고식 따위는 그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입니다.

 ‘흔적의 역사’를 보면 율곡(栗谷)이나 다산(茶山) 정약용 같은 이름난 선비들도 혹독한 신입생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이런 신고식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봉건사회에 어울리는 풍습이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풍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선배니 후배니 가리고 따지는 것은 선배에게 기대되는 행동이 있고 후배에게 기대되는 행동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여기서 제 1등으로 꼽히는 후보자는 단연 군대조직입니다. 그러나 신고식이라고  이유없이 신참들을 두들겨 패고 술을 강제로 먹이는 것은 후배들의 마음속 저항심리를 건드리지 진심으로 존경과 복종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속담에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위에서 본보기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아래 신참들은 저절로 본보기를 따를 것입니다.

 이 신참 신고식이 고려말에 시작되어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남을 괴롭히고 제압하고 싶은 병적인 잔혹성 내지 가학성(Sadism)의 유전자가 우리 피 속에 흐르고 있는 모양이지요.

 흔히 집에서 어른이 잘하면 자식에겐 문제가 없고 어른이 망나니 짓만 하면 그 자식은 볼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런 공식을 잘 따르지 않는 습성이 있지요. 어른의 행동이 아무리 개차반일지라도 그 자식들은 낱낱이 똑똑해서 제 갈 길을 가는 모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어른이 행동을 아무리 잘해도 그 자식들은 개차반이 되는 수도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살이가 흥미롭고 살맛이 나는게 아닙니까?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걸핏하면 무고한 시민을 잡아서 빨갱이로 몰아 죽이거나 고문으로 병신을 만들어 돌려 보내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올바른 후대들이 나오겠습니까. 그런 사회에서 자라서 성인이 된 사람들은 보고 들은 것이 별로 없으니  그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런 암울한 짓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독재의 사슬 밑에서 성인이 된 사람들이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민주주의를 한다고 설쳐댑니다.

 그것은 마치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사람이 청중 앞에 나와서 “나의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이 즐거운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지요. 이들은 말로 민주주의를 외쳐대지만 자기들의 행동 혹은 생각 레파토리(Repertoire)에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100대 매질하던 것을 20대 이상은 못때리는 법을 만들었다고 “오늘은 민주주의를 실행했다”고 할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50년, 100년 세월이 흘러서 지금 민주주의 한다고 떠들어대는 세대가 저 세상으로 가고 나서 새싹 돋아나듯이 자란 새 세대가 와야 그때 민주주의를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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