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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나빙과 선비 박제가
leed2017

 

 나빙은 1733년에 나서 1799년에 죽은 화가의 이름입니다. 중국 강소성 양주 출신으로 독창적인 화풍을 자랑했던 양주팔괴(揚洲八怪)의 한 사람이지요. 초정(楚亭) 박제가는 정조 때 살았던 천재 선비로 젊어서는 문학에, 30세 이후에는 경제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불후의 명저 ‘북학의’를 펴냈으나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얼 출신이었기 때문에 장래가 암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고독하고 괴로웠다지요. 초정은 소위 백탑파라고 불리는 문학파, 지금의 파고다 공원 주위에 사는 몇몇 사람들과 친교를 맺고 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북경에서 만난 화가 나빙이 있었습니다.

 초정의 조선사회에 대한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합니다. 그를 살린 것은 임금 정조였지요. 초정이 30세 되던 해에 정조 임금에 의해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었습니다. 1790년 8월 초정은 북경에 가서 나빙을 만났습니다. 당시 나빙은 56세였고 초정은 40세였다고 합니다.

 1801년 네번째로 북경에 갔을 때는 나빙은 이미 죽고 없었지요. 초정은 나빙이 있던 곳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며 곡을 하였답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멀리 조선에서 와서 돈을 없애가며 친구의 제사를 지내주나요?” 선비 초정은 대답하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벗이니 돈을 쓰고 안쓰고는 따질 바가 아니오.”

 위의 사실로 보아 초정과 나빙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누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우정이 아니라면 자기보다 16살이 많은 선배에 대한 초정의 존경이라 해도 좋겠지요.

 우리는 우정이라 하면 관중, 포숙아 처럼 어릴적 호두불알시절부터 친해야 평생지기가 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로 오성대감(백사 이항복)과 한음(漢陰) 이덕형의 우정은 기실 둘 다 성인이 된 후에 결혼하고 나서 시작된 우정입니다. 6살 먹은 백사가 한음과 말타는 놀이를 하는 이야기는 모두 만들어낸 말입니다.

 요새 세상에서는 어릴 때 동무가 평생 친구로 이어지기는 무척 힘이 듭니다. 초등-중등-고등-대학의 긴 여정을 모두 같이 지낸 친구는 천 명 중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하지요. 어느 단계에서나 갈라질 확률은 무척 높습니다. 대학부터는 본격적인 경쟁사회가 되지 않습니까? 입학시험, 회사 취업, 장학금 선발, 어느 것 하나 경쟁 없는 데는 거의 없습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은 초정이나 중국의 나빙이 살던 때와는 무척 달라졌습니다. 나는 어릴 때 아버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우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거짓으로 온 손에 돼지피를 묻히고 친구집을 찾아가 노크하고 “내가 살인을 했으니 어디 좀 숨겨달라”고 했답니다. 첫번 째 찾은 친구는 모른척 하고 문을 닫아버렸으나 다음 친구는 “어서 들어오게” 하며 친구를 숨겨 주더라는 것입니다.

 아버님의 ‘친구’는 잘못도 숨겨주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요새에 친구라고 숨겨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새는 진정한 친구라면 살인했다는 친구의 마음을 우선 가라앉히고 그를 잘 타일러서 빨리 경찰에 자수를 권하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초정과 나빙이 살던 시대는 지금에 비하면 극히 단순한 농경사회였습니다. 그렇다고 나빙이 살던 집을 찾아가서 문상을 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초정과 나빙이 애당초 어떻게 우정을 맺었을까요? 내 생각에 나빙은 당시 이름난 화인으로서 조선에서 신사상으로 이름은 날리고 있는 초정의 문장에 무한한 매력을 느꼈을 것이고 초정은 나빙의 양주팔괴의 기운과 정신 속에서 숙성된 고독을 발견하고는 마치 자석처럼 달라붙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양주팔괴의 예술적 정신은 자신과 주위에 대해 비타협적이고 반항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면 이러한 생활태도와 탈속(脫俗)정신에 어릴 때부터 젖어온 박제가는 자신에 대한 불만, 반항적 기질과 맞아 떨어져서 급격하고도 뜨거운 우정으로 돌진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무튼 조선에서 이렇다 할 사상적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초정은 당시 동양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북경에 가서 나빙 같은 강렬한 고독성과 예술을 제시하는 사람을 만나자 첫 눈에 반해버려 둘은 막역한 우정의 세계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생 5, 6번 만나서 우정이라고 떠들기는 마치 김정은과 미국 대통령 도널트 트럼프의 우정 같은 무리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초정과 나빙의 인간관계는 통상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한 점의 정치적 계산도 없는 순정 그대로의 우정인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시(詩), 아니면 글씨(書), 아니면 그림(?)에 대해서 서로가 느끼는 관심도 무시못할 매체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것을 사랑으로 옮겨 놓으면 아가페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202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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