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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leed2017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지나친 정직이나 지나친 솔직함은 마음 편한 삶을 살아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남과 더불어 지내자면 때로는 남이 저지르던 내가 저지르던 정직 아닌 행동을 보고 눈감아 줄줄도 알아야 하고, 가끔 거짓말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삶의 현실에 경건할 줄도 모르면 내 행동은 물론 남의 잘잘못도 바로 보질 못하고 무조건 깎아 내리거나 가혹한 평가를 내리기가 무척  쉽습니다.

 정조 때 선비로 다산(茶山) 정약용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선비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그의 아버지 명령으로 뒤주 속에서 죽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임금 정조가 다산의 재주를 아껴 아들처럼 잘 보호해줬으나 당시 집권세력이던 노론의 미움을 받아 천주교 신자라는 죄목을 씌워 강진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다산이 쓴 시에 호박탄(歎)이란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詩) 뒤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다산이 회현동에 살 때 하루는 대문을 들어서자 분위기가 여느 때와는 달랐다고 합니다. 다산집 계집종이 눈물을 찔끔거리고 서있고 아내 홍씨가 상기된 얼굴로 있었습니다.

 사연인 즉 끼니가 끊긴지 오래여서 호박죽으로 연명했는데 그나마 호박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마침 옆집 텃밭에 열린 탐스런 호박 하나를 발견한 계집종은 주인 몰래 그 호박을 따왔습니다. 죽을 끓여 주인께 올렸더니 성품이 대쪽같은 홍씨는 화를 내며 매를 들었습니다. “누가 너 보고 도둑질 하라더냐” 하며 야단을 치고 때렸습니다.

 이를 본 다산은 “아서라, 그 아이는 죄가 없다. 꾸짖지 말라. 이 호박죽은 내가 먹을테니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말라”고 말한 뒤 그는 속으로 탄식하였습니다. “만권의 책을 읽은들 아내가 배부르냐. 두랑 밭만 있어도 계집종이 도둑질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나도 출세하는 날이 오겠지”

 다산은 배가 고파 호박 하나를 도둑질한 어린 계집종을 윤리를 들먹이며 꾸짖고 매질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위선인가를 실토한 것입니다. 다산은 다른 ‘가난’이라는 시에서 “안빈낙도를 말하지만 막상 가난하니 안빈이 안되네. 아내의 한숨소리에 체통이 꺾이고 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도 못시키겠네.” “그야말로 삼일만 굶으면 정승도 도둑이 된다”는 현실을 구태여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삶의 엄숙함 앞에 경건해지지 않는다면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산은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삶”을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삶의 현실을 떠난 초월적인 삶은 예술이건, 윤리 도덕이건 아무 의미가 없는 헛말이 되기가 쉽지요.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윤리 도덕적인 삶인가 하는 데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 철학자나 성직자, 윤리 도덕적인 삶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우리가 듣기에는  고상하기 짝이 없는 삶의 길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인정과 실정을 무시하는 고상함도 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로 제 자식을 굶기면서 남의 자식 굶는지를 걱정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행동 하한계는 “너무하다” “지나치다”는 등의 말이 나올 때는 우리 행동이 위선의 영역을 밟지 않았나?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말이지요.

 나는 살아가는데 구김살 없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구김살 없는 인생을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지식, 문화예술, 윤리도덕이 들어 ‘사람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마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나도 자주 이런 덫에 걸려 듭니다.

 며칠 전에는 어느 시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 시인이 이번 코로나 위기 때 집에서 뭘했는가를 물었습니다. 나는 책으로 치면 한 250쪽은 될 분량의 시조풀이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보내버렸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안해도 좋은 말을 한 것이 화를 불러왔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옛 시조를 300수 가량 외웠지요. 외우는데 두번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다”고 했더니 “그 말은 귀가 헐도록 들었어요”하며 제발 자랑 좀 그만하라더군요. 나는 내 자신이 무척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지요. 좌우간 “귀가 헐도록 자랑한 것은 좀 ‘지나친’ 것은 아닌가”

 최근 나에게는 비장(?藏)한 무기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나의 주책없는 나이가 올해 여든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귀가 헐도록 자기 자랑을 한 것도 이제 와서 나이 탓으로  돌릴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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