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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뎅이
leed2017

 

 2020년 초가을 어느날 내게 이메일이 한 통 들어왔습니다. 보낸 사람은 한문학자 L교수. 내 수필집 몇 권을 영남대학 L교수에게 보냈는데 자기는 그 대학교에서 벌써 몇 년 전에 은퇴를 해서 이제야 책을 받게 되어 고맙다는 인삿말이었습니다. 
 나는 L교수와 인연이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있다는 것은 L교수의 친형 L박사가 13살 나이에 우리 종가의 사위로 들어왔기 때문에 나의 월북한 형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L박사는 S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온 물리학 박사. 우리나라에 맨 처음으로 컴퓨터를 들여온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의 부인은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이나 두 사람은 평생 그럴 수 없이 사이가 좋아서 많은 모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동생 L교수는 S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고 대만, 일본, 미국 등 여러 대학의 방문교수를 지낸 분입니다.
 L교수의 부인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49년 예안국민학교 4학년이던 나는 서울 형님댁에 가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는 안암동에 있는 종암국민학교였지요. 신설동에서 살던 나는 돈암동에 사는 J라는 나와 동갑내기 소년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와 J가 친구가 된 것은 우리집과 J의 집이 경북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와 산다는 외로움이 두 집을 가깝게 만들어준 모양입니다. 그 집 맏아들인 J와 나는 동갑내기. 성격이 예의 바르고 명랑한 J는 나의 좋은 동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6.25 한국 전쟁이 터졌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내 고향 안동까지 500리 길을 걸어서 갔습니다. 그때 일행은 어머니와 작은형, 둘째 누나, 그리고 아버지 외가쪽으로 친척되는 신혼부부 한쌍, 이렇게 모두 6명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큰 형님의 전송을 받으며 장호원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날이 새면 걷고 날이 저물면 잠을 자는 생활을 되풀이 하며 10일 만에 안동 땅에 도착했습니다. 안동시에서 하회마을을 국도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 얼마 안가면 J의 고향집 원뎅이가 나옵니다. 열흘 동안의 풍찬노숙에서 벗어나게 될 어머님은 어느 큰 기와 집으로 들어가시면서 “이제 다 왔구나” 좋아하시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원뎅이 집은 큰 기와집이었습니다. 지금 어슴프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집 앞에 큰 나무가 하나 서 있고 그 집 안채도 역동 우리집 안채 처럼 크고 넓직한데 마루 북쪽으로 문이 두개나 있어서 여름에 두 문을 열어 놓으니 무척 시원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말이 고향가는 즐거운 길이지, 열흘동안 걷다가 자고 걷다가 자고 하는 일과만 되풀이 하다가 원뎅이 천당에 들어오니 긴장이 탁 풀어지는 것 같고 모두들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싶은지 그 집 어른들과도 무척 재미있게 대화를 했습니다.
 안동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교수로 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동연회(同硯會)라는 모임이 하나 있습니다. 회원이 모두 200명을 넘었습니다. 내가 E대학에 가 있을 때였습니다. 한번은 동연회에서 의성 고문사 관광을 갔습니다. L교수의 부인, 즉 J의 친동생이 내 아내에게 이동렬 교수를 아느냐고 물었답니다. J의 동생도 오빠 친구인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겠지요.
 그 일이 있은 후 L교수는 영남대학에서 은퇴하면서 은퇴 기념으로 자기가 일고 있는 전국 중국문학 교수들이 각자가 애송하는 중국시 한 편씩을 부탁하여 ‘중국 명시 감상’이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퍽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요. 이 ‘중국 명시 감상’은 내 서재에서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통화를 하다가 L교수의 부인(J의 여동생) 안부를 물었더니 상배(喪配)를 했다는 청천벼락이었습니다. 70년 전, 내가 신설동에 살때 돈암동 J에게 가면 가끔 어린 아이로 보이던 그 명자가 벌써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번에 한국을 나가면 원뎅이 집, 70년 전에 어머니께서 지친 몸을 끌고 “이제 다 왔구나” 하고 좋아 하시던 원뎅이 집을 가보리라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L교수에게 했더니 “그 원뎅이 집은 벌써 헐리고 그 집터가 경상북도 도청의 딱 중심이 되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70년 동안 간직한 내 어린시절의 추억이랄까. 내 가슴 속에 아련한 꿈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앉는 순간이었습니다.
 L교수가 상배했다는 말을 들으니 내 몸속에 있는 기력이 다 빠져나가는듯 싶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내가 L교수와 통화한 시간이 한시간 반을 넘고 있었습니다. L교수는 중국문학을 전공한 박사답게 왕발(王勃)의 시 한 구절(이 세상에 지기가 있다면야 하늘 끝도 이웃 같으리: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을 끌어대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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