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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恭齋) 윤두서
leed2017

 

옥에 흙이 뭍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 이 있으니 흙일듯이 있거라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려졌으니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가 흙덩이로 알고 있네. 옥을 아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인즉 흙인듯이 가만히 있거라

 위의 시조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증손 공재(恭齋) 윤두서 작입니다. 윤두서는 학자임과  동시에 이름난 화가로 현재(玄齋) 심사정, 겸재(謙齋) 정선 등과 더불어 조선화단의 삼재라 불립니다. 실학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다산(茶山) 정약용은 그의 외증손자가 되지요. 다산이 어렸을 때 서울에 있던 외갓집을 자주 드나든 것은 공재 서실에 있는 책을 빌려가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공재는 당시 정권 실세에서 밀려난 남인의 우두머리인 고산 윤선도의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 세상에서 벼슬길에 올라봤자 그의 앞에 놓인 길은 험한 가시밭길 뿐인 것이 너무나 뻔한 것이었습니다. 능력은 탁월하나 그 능력을 발휘해 볼 기회가 없는 공재는 이 글의 맨 처음에 소개한 시로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가슴 뿌듯이 올라오는 자신감을 누르면서 이 시조를 읊었을 것입니다.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는 어찌해서 호남의 거부가 되었을까요?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고산의 고조부 어초은(漁樵隱) 윤효정이 당시 호남의 대부호 초계 정씨네 사위가 되는 바람에 처가에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갓집 덕분에 벼락부자가 된 어초은은 장자상속을 시행하고 이것을 윤씨 집안 대대의 전통으로 남겨 해남윤씨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재력을 바탕으로 인물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어초은의 4대손에 이르러 고산 윤선도가, 6대에 이르러 공재 윤두서가 나온 것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나는 2017년 한국에 나갔던 길에 해남에 있는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의 고택 녹우당을 가보았습니다. 녹우당이라는 행서 간판은 공재의 친구인 성호 이익의 형님이요 동국진체의 원초로 불리는 서예가 옥동(玉洞) 이서의 글씨지요. ‘우리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에 따르면 이 집은 고산이 30년 넘는 세월을 유배로 이리저리 다니다가 환갑이 넘어 다시 관직에 들어갔을 때 당시의 임금 효종이 왕세자 시절 사부였던 고산에게 지어준 것을 해남으로 옮겨온 것이라 합니다.

 해남 윤씨의 유물관에서 공재 윤두서의 그 유명한 자화상을 보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라 하나 나같이 그림에 식견이 없는 사람 눈에는 다른 초상화 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자화상은 나에게 무척 고독하고 쓸쓸한 감회를 듬뿍 던져 주었습니다. 자기 능력을 떨쳐볼 기회가 막혀 버리고 앞날은 어둡기만 하던 공재의 심정을 화폭에 담아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의 얼굴 전체, 특히 눈(目)에서 풍기는 고독함과 쓸쓸함은 이 초상화가 풍기는 향기라면 향기고 독백이라면 독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재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남인의 골수이며 실학이라 부르는 학문에서 시(詩), 서(書), 화(?)가 공재는 가정적 불행으로 그의 삶은 몹시 피로했습니다. 공재의 나이 22살 때 부인이 저 세상으로 가고 둘째 부인을 맞아 그녀 사이에 7남2녀를 두었습니다. 공재는 자식복만은 타고 났지요. 조선 실학의 선구자로 백과사전적 지식을 소유한 지봉(芝峯) 이수광이 처증조부였으니 그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았겠지요.

 가정적인 불행의 연속(아버지, 어머니, 형제의 죽음)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해남 연동으로 낙향했습니다. 그가 녹우당에 살았을 때는 노비 500명에 논밭이 2,400 마지기를 두었다는 부호 공재는 48세로 녹우당에서 피곤한 눈을 감았습니다.

 유홍준의 ‘화인열전’을 보면 공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평생 친구 옥동(玉洞) 이서는 다음과 같은 제문을 지어 그들의 우정을 절절히 표현하였습니다.

 

 …한마을에서 같이 늙어가기를 바랐더니… 오호라 하늘이 나를 돕지 않는구나. 어찌 나의 분신을 빼앗아 가는가… 다시는 마음을 합할 친구가 없으며 다시는 마음의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없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외롭고 쓸쓸하구나…

 요새는 자기가 스스로 흙묻은 옥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로 들끓는 세상. 자기 자신을 옥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재능이 있고 없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가 옥이라고 부르면 그만이지요. 이들에겐 예의 염치도 없고 그저 자기가 순 옥(玉)이라고 외쳐대면 그만입니다. (20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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