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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와 쌀장수, 그리고 대원군
leed2017

 

 한말(韓末) 경북 영천 어느 암자에서 역학을 공부하다가 서울로 올라온 정환덕 이라는 사람은 어찌어찌 하다가 1902년 마흔살 나이에 황제의 시종이 되었습니다. 그가 맡은 일은 황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옆에서 시중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15년동안 황제(고종)를 모시고 일하는 동안 듣고 본 일들을 비밀히 기록해 두었습니다.

 나의 대학 선배되는 역사학 교수 박성수가 이 비밀기록에 주석을 달아 ‘남가몽(南柯夢)’을 읽다가 관심을 끄는 사람 둘을 만났습니다. 이 두 사람은 판서 홍종응과 쌀장수 이천일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스럽고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 그 내용을 요약해 봅니다. 이 이야기는 흥선 대원군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권좌에 오른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제일 먼저 손을 보려했던 사람은 이조판서 홍종응이었습니다.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1863년 진주민란 이후 나라경제는 어려웠는데 흥선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흥선군이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이조판서 홍종응을 찾아가 구걸하게 되었는데 홍판서는 그야말로 문전박대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댁의 하인이 흥선군이 나올 때 뒤따라 나오면서 발길로 걷어차는 바람에 나무조각이 튀어 흥선군의 손을 내리치니 다섯 손가락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흘렀습니다. 권세 높은 집 하인들은 주인이 하는대로 돈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습니다.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싸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도저히 빈 손으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문득 서강에서 쌀장수를 하고 있는 이천일이 떠올라서 그를 찾아 갔습니다. 흥선군을 맞은 쌀장수 천일은 크게 놀랐습니다. “어찌해서 이런 누추한 곳에 행차를 하셨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고 지금 세모를 당하니 추운 절기에 살아갈 일이 막연하여 염치불구 하고 찾아왔네” “물건 보내라는 쪽지 한 장이면 족할텐데 대감께서 여기까지 친히 오셨습니까? 송구할 따름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조치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천일이 말한대로 이튿날 아침 일찍 물자를 보내왔습니다. 보낸 물건을 보니 쌀 20섬, 돈 1,000꾸러미, 정육 100근, 장작나무 50바리, 담배 30근이었습니다.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 그로부터 몇달이 지나지 않아 거지 흥선군의 아들 명복이 임금이 되어 흥선군은 대원군이 된 것입니다.

 ‘남가몽’에서 바로 몇 줄을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즉위식 날 대원군이 서가의 쌀장수 이천일을 특별히 부르니 천인은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나는듯이 운현궁으로 들어섰다. 대원군이 친히 손을 잡고 인도해 갔으니 천일은 떨리고 황공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굽히고 있었다. 그 두터운 은혜는 이루 다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이때 대원군의 부인 민씨가 이천일이 온 것을 알고 궁중의 잔칫상을 내어오게 하니 천일의 손이 떨려 진수성찬을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대원군이 친히 천일의 손을 잡아 상에 앉게 한 뒤 큰 은반에 홍로주를 가득 부어주니 천일에게 그렇게 큰 영광은 처음이었다. 대원군은 왕실의 체면은 많이 떨어트렸으나 그 정분은 잊지 않았던 것이다. …드디어 이천일이 선혜청 고직에 임명되니 그 수입이 경상감사의 봉급보다 못하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 이 일이 2020년7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일어났다면 야당은 대원군이 막대한 뇌물을 받은 것으로 몰아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느니, 쌀장수 이천일을 뇌물죄로 국회에 소환해야 한다느니 별아별 소동을 다 떨었을 것입니다.

 한편 흥선군을 문전박대 한 홍종응 판서는 외부압력에 굴하지 않는 지조있는 관리로 칭송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맹꽁이 짓입니다. ”노루를 쫒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너무 밝히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逐鹿者 不見山, 攫金者 不見人)”라는 옛말을 모르고 하는 무식한 짓들입니다. 이런 일을 법으로만 해석하려는 것은 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짓이지요. 법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법을 쓰는 것도 사람입니다. 인간이 베푼 사랑을 법에 연관시키려 할 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커피잔을 앞에 놓고 나는 ‘남가몽’ 구절을 아내에게 읽어주다가 다 마치기도 전에 목이 메여 끝까지 읽어주지를 못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흥선군에게 이렇게 천사같이 착한 구원의 손을 내민 이천일이 내 감정의 쓰나미(tsunami)가 되어 머릿속을 휩쓸고 가버렸기 때문이겠지요.

 먹을 것을 동냥하러 온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어 즉위 잔치에 서강의 쌀장수 이천일을 초대했을 때 땅에 발도 부치지 않고 나는듯이 운현궁으로 달려왔을 이천일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장면은 마치 서부영화에서 권총을 취두르며 마구 사람들을 죽이던 악질 총잡이가 1:1의 권총대결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통쾌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맛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와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와 비슷한 처지에 당면하는 경우는 가끔 있지 싶습니다. 남을 도와야 한다는 말은 쉬워도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는 왜그리 어려운지요. 잘 아는 사람,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선행의 손길은 쉬워도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천일과 홍종응 둘 다 가슴에 품고 삽니다. 홍종응이 나올 때가 많겠지만 이천일이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었고 GNP가 몇만불이 되었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올라갔다 해도 홍종응 같은 사람들이 늘어간다면 우리 사회는 모래알이나 바둑돌 같은 사회, 훈기가 따스한 정(情)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메마른 사회가 될 위험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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