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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마을 사람들
leed2017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투입된 진압군이 민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을 들고 경계에 임하고 있다.

 


▲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앞에 있는 여순사건 안내판

 

 뉴욕에 사는 고등학교 후배 K가 좋은 신간이라며 책을 한 권 보내왔습니다. 책을 지은 이는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고 제목은 ‘우린 너무 몰랐다’. 2019년 1월에 나온 책입니다.

 책 표지 뒷장에는 도올이 “나의 생애에서 진정한 국학의 출발을 알리는 횃불”이라 평했듯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알아서는 아니 될 것으로 저주당한 우리 역사의 실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이전에 도올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고 나서도 뭣을 읽었는지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가령 ‘여자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때 저자가 말하는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남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주제와 별 관계가 없는 엉뚱한 얘기를 여기저기 너무 많이 흘리고 다니기 때문에 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여간 큰 실망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K가 이번에 보내온 책에는 도올 특유의 ‘딴전’은 많이 줄어들었고 책 주제가 오늘날의 현실이 되기까지의 역사적 설명과 문제의 근원부터 살펴보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안점은 제주 4.3사건과 내가 여수, 순천 반란 사건으로 알고 있었던 여수순천 민주항쟁 사건을 다룬 것이지요. 나는 제주 4.3사건은 제주도 빨갱이들이 죄없는 민간인들을 죽창으로 마구 찔러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자 당시 당국에서 토벌대를 구성해서 보낸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여수순천 반란 사건도 군인들이 난동을 부린 사건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도올의 주장은 제주 4·3사건만 그런 게 아니라 수십 년을 두고 제주, 여수, 순천 사람들이 받은 학대와 차별대우, 학정과 민생고에 시달린 불만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고 만 민중항쟁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승만이 빨갱이의 난동으로 몰아서 그렇게 꾸미고 선전한 것이지 좌익세력이 주동이 된 것도, 혹은 군인들만이 난동을 부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 도올의 주장입니다.

 저항세력에 빨갱이들이나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일부 끼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일부 민간인과 군인들이 토벌대의 공세가 더 심해지자 가까운 지리산으로 숨어 들어가서 빨갱이가 되어 버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주 세력이 군인, 빨갱이들이었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도올의 주장에 공감을 많이 합니다.

 책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화적(逸話的) 기술(記述)이 많았습니다. 그 중 내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것은 여수순천 민중항쟁이 일어났던 다음 해, 즉 1949년 음력  8월17일 밤 순천 신전마을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비극입니다. 책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순천 낙안면)신전마을은 본시 평화로운 넓은 논을 가진 32 가구의 순결한 농촌마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산 사람들이 14살짜리 연락병 노릇을 하던 소년을 데리고 왔다. 총상을 입었던 것이다. 총상을 입은 소년을 치료해 달라고 산 사람들이 부탁하는 것이다. 인심이 순후한 시골사람들이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이들 동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성심껏 치료해주고 먹여주고, 새 옷을 입혀주고, 따스한 솜이불에 재웠다. 이 아이는 곧 건강을 회복하고 명랑하게 동네아이들과 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산통이었다.

 고립된 농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당연히 갑작스레 나타난 아웃사이더가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아이를 괴롭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화가 나서 “너희들 우리 무리들을 데려와서 가만두지 않겠다”. 이때 이곳을 지나가던 면 서기가 이 말을 들은 것이 모든 비극의 발단이었다.

 “우리 무리들이라구?” 앞뒤를 생각하지 못하는 이 맹꽁이 같은 면 서기는 이 사실을 토벌대에게 신고했다. 토벌대는 즉각 이 소년을 체포하여 취조를 했다. 그리고 이 동네 사람 전원을 추석달이 밝은 한밤중에 한가운데 있는 큰 집 마당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말했다. “이중에서 너에게 치료를 해주었거나 먹을 것을 준 사람을 모두 찾아내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죽여버리겠다.”

 이 소년은 자기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보살펴준 사람들, 상처를 치료해주고, 밥도 주고, 누룽지도 주고, 옷도 빨아주고, 잠도 재워주던 마을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 토벌대의 총구는 이들을 향해 탕탕 불을 뿜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22명의 생명, 3살 난 어린 아기부터 60세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일순간에 싸늘한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빨갱이가 된 것이지요.

 도올 말마따나 이들은 빨갱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빨갱이라는 영원한 딱지가 붙게된 것이지요. 물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연좌법이라는 천하의 악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렇게 어린 아이건 노인이건 마구 쏴 죽이는 토벌대라면 그 토벌대는 인간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스러운 최악질의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이 토벌대 중에서도 불교 신자도 있고, 천주교 신자도 있고, 개신교 신자들도 있었을 것인데 이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불경, 성경을 읽고, 무엇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방아쇠를 당기던 그 잔인한 손으로 헌금을 내는지 나는 너무나 놀랍고 믿기지를 않아서 한동안 할말을 잃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신전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토벌대가 왜 이렇게 잔인한 짓을 했을까요? 아무도 알 수 없지요. 우리 가슴 속에는 연락병 소년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곱고 따스한 마음이 있는가 하면, 그의 상처를 치료해준 사람들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악하고 모진 마음도 있습니다.

 악하고 모진 마음이 곱고 부드러운 마음을 치고 올라온 것은 무슨 계기일까요? 우선 상부의 명령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는 사람 마음이 따스한 쪽으로 내려야 합니다.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까.

 도올은 그의 책 맨 끝 두 쪽을 남겨두고 당시의 대통령 이승만의 명령을 적어놨습니다.

 

“모든 지도자 이하로 남녀 아동들까지도 일일히 조사해서 불순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해서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여…”

 소위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끔찍한 말, “남녀 아동들까지도” 조사해서 불순자를 다 제거해야 한다는 말을 거침없이 해댈 수 있겠습니까? 신전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토벌대는 한가닥의 부끄러움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내 생각으로는 그 반대이지 싶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오늘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빨갱이들이여 올테면 와라. 우리가 그대들을 박살내 주리다”의 용기충천, 의기양양한 꼴이었지 않겠습니까.

 이런 대통령을 우리는 왜 좀 더 일찍이 하와이로 보내 버리지 못했던가 나는 역사를 한탄할 뿐입니다. (201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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